특조단 보고서… 판사들 PC 다 뒤졌지만 '블랙리스트' 사실 무근으로 드러나
  •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으로부터 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 퇴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으로부터 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 퇴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특정 성향의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문건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판사 블랙리스트'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광우병 괴담' '세월호 괴담'처럼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책임을 누가 져야할지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5일 저녁,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며 "정기 인사와 해외 연수에서 불이익을 봤다는 자료나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법원행정처가 우회적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재판 진행의 전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한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며 "법원행정처가 재판부와의 연락을 통해 선고 결과를 알았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특별조사단은 법원행정처가 판사 전용 익명 인터넷 게시판의 폐쇄를 유도하는 내용의 검토 문건을 만든 것은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비쳐질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판사 전용 익명 인터넷 게시판은 일부 판사들이 동료 판사들을 향해 "패거리" "적폐 종자" "법비(法匪)" "개XX"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영원히 은따(은근한 따돌림) 당할 것" "청산이 절실하다" 등으로 매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지난 정권에서 법원행정처가 반대 성향의 판사들을 '블랙리스트' 형식으로 관리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인사나 해외 연수 상의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은 광우병이나 세월호 때처럼 '괴담' 수준으로 판명난 셈이다.

    이에 따라, 헌법기관인 법원을 극심한 내부 분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제기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할지가 향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대법원은 지난해 4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1차 진상조사)해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한 직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판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3차 재조사를 지시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PC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해당 PC를 사용했던 판사의 동의 없이 내용을 뒤져 위법성 논란을 빚기도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재조사 과정에서 둘로 쪼개진 법원 내부 구성원들 간의 상흔(傷痕)은 쉽게 봉합되기 어려워보인다. 이에 법원 일각에서 "갈등을 조정해야 할 김명수 대법원장이 되레 갈등을 키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으로부터 내용을 보고받은 김명수 대법원장은 같은날 퇴근길에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조사 결과를 면밀하게 잘 살핀 다음에 구체적 입장은 다른 기회에 밝혀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