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핵협정 탈퇴 ④] 북한 核도 마찬가지…美北회담 결과 주목
  • ▲ 지난 3월 초 영국 방문 당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3월 초 영국 방문 당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란핵협정에 탈퇴하겠다는 결정을 하는 데는 중동 지역의 두 동맹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무리 트럼프 美대통령이라 해도 이란을 견제할 동맹국이 없다면 핵협정 탈퇴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트럼프 美대통령이 용단을 내릴 수 있게 도운 두 동맹국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다.

    “이란 막으려면 핵무장도 가능”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2017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5성급 리츠 칼튼 호텔에 출입이 금지되고, 이곳에 200명이 넘는 왕족들이 일시에 구금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도한 일이었다.

    국방장관과 제2총리를 겸하고 있던 빈 살만 왕세자는 특권층의 부정부패와 비자금을 일소해 국가 개혁을 시작한다는 명분으로 왕족들과 귀족들을 호텔에 강제구금한 뒤 ‘국가개혁을 위한 재원’을 걷었다. 2018년 1월 말에 풀려난 왕족과 귀족들이 정부에 지불하기로 한 ‘합의금’은 4,000억 리얄(한화 약 11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왕족과 귀족들을 장악한 빈 살만 왕세자는 국내외에서 ‘개혁’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파란을 일으킨 것이 對이란 정책이었다. 그는 ‘시아파 종주국’을 자처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을 도발하는 이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가 이란에 대응할 뜻을 적극적으로 밝히기 시작한 때는 2017년 11월.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갑자기 사임한 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쏘아대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다.
  • ▲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美백악관에서 회담을 갖는 가운데 사우디가 구매한 미국 무기 목록을 보여주는 트럼프 美대통령과 옆에서 웃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美백악관에서 회담을 갖는 가운데 사우디가 구매한 미국 무기 목록을 보여주는 트럼프 美대통령과 옆에서 웃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초부터는 ‘핵무장’ 의지까지 밝히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에는 美CBS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이란이 핵무장을 한다면 사우디도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밝혀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당시 美CBS 보도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슬림 세계에서 상위 5위권에 드는 군사력을 지난 강국으로 이란은 경쟁국이 아니다”라며 “그렇지만 나는 아야톨라 하마네이(이란 최고종교지도자)가 과거 히틀러처럼 중동에서 세력 확장을 원하고 있어, 그를 중동의 새로운 히틀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히틀러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면서 “나는 중동에서 그런 비극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란을 막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빈 살만 왕세자의 ‘이란 대응 핵무장’ 발언이 알려지자 주요 외신들은 2013년 스웨덴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아모스 야딘 前아만(이스라엘 군 정보국) 국장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핵무장을 하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또한 지난 4월 초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영토 주권이 있다”는 말과 함께 “이란 정부처럼 사우디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에 함께 맞서면 공동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혀 무슬림 진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로이터 통신 등 해외 주요 외신은 빈 살만 왕세자의 등장 이후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며 그가 중동 질서 재편에서 트럼프의 강력한 우군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美대통령의 이번 이란핵협정 탈퇴 또한 빈 살만 왕세자의 주장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들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이란의 거짓말, 말이 아니라 증거로 보여 주겠다”

    이란의 핵개발에 누구보다 강력한 반대를 해왔던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81년 6월 이라크 오시리크 원전 공습, 2007년 9월 시리아 원전 공습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에 보고서나 발언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택했다.
  • ▲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국방부에서 공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벤냐민 네타냐후 총리. 그는 이 자리에서 이란 비밀 핵무기 개발 자료를 공개했다. ⓒ연합뉴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국방부에서 공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벤냐민 네타냐후 총리. 그는 이 자리에서 이란 비밀 핵무기 개발 자료를 공개했다. ⓒ연합뉴스-신화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방부에 직접 나와 “이란이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과 핵개발 중단 합의를 하고서도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면서 관련 증거를 공개했다. 이 모습은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2016년부터 2년 넘게 이란 테헤란의 비밀 창고를 계속 감시하다 확실한 증거를 잡아내고, 내부에 있던 핵개발 관련 자료들을 모두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은 ‘아마드 프로젝트’를 통해 10킬로톤급 핵탄두 5개를 생산하려 했다”면서 증거자료 5만 5,000여 페이지와 함께 5만 5,000여 건의 기밀문서가 담긴 CD 183장도 공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의 비밀 핵개발 계획에 관한 자료를 미국에게는 이미 전달했고, 독일, 프랑스에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美백악관은 같은 날 “이스라엘 총리가 발표한 내용 가운데 주목할 만한 새로운 항목이 포함돼 있다”면서 “이란이 비밀리에 강력한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실패했다”는 성명을 내놨다.

    이란 정부는 즉각 “과거 의혹의 반복에 불과하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유치한 연기 그만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란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와 시리아 원전 공습뿐만 아니라 2004년 4월 북한 용천역 폭발을 통해 북한이 시리아에 보내려던 핵물질과 핵무기 기술을 배운 과학자들을 암살한 적도 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이란 내부에서 핵무기 개발에 종사하는 과학자 7명을 암살하기도 했다.

    이처럼 물불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은 지난 3년 동안 이란핵협정이 미흡하다며 불만을 제기해 왔고, 동시에 필요하다면 사우디아라비아, 걸프 지역 국가들과 손을 잡고 이란과 그 추종세력을 제거하겠다는 뜻까지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미국에게는 이처럼 중동 지역 전체의 질서유지를 맡길 수 있는, 강력한 동맹국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란핵협정 탈퇴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결정은 곧 다가올 美北정상회담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