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를 단매에 소멸해야 평화 담보”
  • 운전석에 앉았다? 혹시 ‘대리기사’(代理技士)?

    李 竹 / 時事論評家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드디어 이 나라에는 ‘평화’가 젖과 꿀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시작이 아니라 이미 가득 찼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우리말사전과 백과사전에 나오는 대로 ①평온하고 화목함. 전쟁·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②인간집단[종족·씨족·국가·국가군] 상호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 도달했다는 느낌이다.

    핵실험을 충분히 해서 비록 다 무너져 내렸지만, 북녘이 그 핵 실험장을 폐쇄한단다. 내외신(內外信) 기자들과 국제기구 요원들까지 참관시킬 예정이라고.

    이 나라의 표준시인 ‘서울시간’보다 30분 늦었던 북녘의 ‘평양시간’을 올해 어린이날부터 이 나라에 맞추기로 했단다. ‘국무위원장님’의 하해(河海)와 같은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칭송이 끊이질 않는다.

    아무개 일간신문에는 “南北 같은 날 확성기 철거…‘55년 소리전쟁’ 이젠 끝날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는 “북한은 우리보다 앞선 이날 오전부터 최전방 지역 확성기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방송 중단은 우리가 먼저 했지만 철거는 북한이 먼저 나섰다”는 ‘군 관계자’의 언급도 포함됐다. 북녘 확성기야 언제 적부터 제구실을 못했다고 했건만...

    유사시 북녘 탱크나 장갑차의 진입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설치된 경기 북부 접경지역 도로변의 ‘대전차 장애물’ 철거·정비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 외에도 전방 접경지역의 땅값이 치솟고, 서울의 ‘평양냉면’집에서는 줄서서 기다리기가 일상이라는 소문이 돈다. 특히, 거창하기 짝이 없는 이른바 ‘남북경협’ 계획이란 것도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더불어서 “트럼프가 노벨상을 받게 하고 우리는 평화를 가져오면 된다”는 매우 건방진(?) 겸양(謙讓)의 말씀도 들린다.

    이렇듯 이 나라 구석구석 ‘평화’가 넘쳐흐르는 판국에 그 으스스한 ‘핵무기’가 어찌 대수 또는 화제가 될 수 있느냐는 듯, 벌써부터 “북녘의 핵 포기”라는 말은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한반도[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듣기에도 멋진 단어조합만이 가끔 등장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모든 것이 녹여 담겼을 법한 뉴스가 엊그제 전파를 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보인 행동이나 발언에 신뢰가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매우 신뢰가 간다 17.1%, 대체로 신뢰가 간다 60.5%로 긍정평가가 77.5%였습니다... 이념 성향별로 살펴보면 진보 성향 응답자의 89.6%, 중도 성향 69.4%, 보수 성향 응답자도 72.9%가 김위원장에게 신뢰를 표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천 2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응답률은 12%,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입니다.”

    이 나라 국민들의 평화를 애호·갈망하는 ‘순박·절절한’ 심정을 비로소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평가 나온다. 글쎄 순박한 건지 멍청한 건지, 절절한 건지 너절한 건지는 잘 분간이 안 되지만...

    그런데 지금 북녘에서도 이 남녘처럼 ‘평화’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도리가 없다. 단지...

    ‘백도혈통’(百盜血統)의 꽤 오래된 ‘정치사전’(政治事典)을 뒤적일 수는 있기에 심심풀이로 ‘평화’에 관한 항목을 찾아냈다.

    “<평화는 우리의 힘이 강할 때에만 보장 될 수 있습니다> 침략과 전쟁은 제국주의의 본성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 구걸하는 방법으로써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우리 주체적 혁명력량을 강화하여 침략자들을 단매에 소멸할 수 있을 때 평화의 유지와 그 공고성은 담보된다. 평화를 전취하기 위해서는 또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원칙적 립장을 견지하고 견결한 반제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요컨대, 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평화’란 “적(敵)이 자신들에게 도전·저항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완전히 잃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저들 스스로 밝혔다. 또한 가방끈이 긴 양반들은 역사가 웅변(雄辯)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다”고 합의·선언했고, 이 나라에 ‘평화’가 넘쳐난다고 하니, 그 ‘평화’가 궁극적으로 누구의 평화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짚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요즈음에야 촌스럽게(?)까지 들릴 그 무슨 ‘위장(僞裝) 평화’ 운운의 정세인식에 설령 동의하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북녘의 ‘으니’가 핵무기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건 엄연한 사실이다. 언제쯤 그 핵무기를 완전히 내려놓고 ‘적수’[赤手:맨손]가 될지, 내려놓기나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이런 조건에서 ‘으니’에게 진정한 평화란 무엇을 의미할까? 끔찍하지만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신의 권좌(權座)가 남북을 통 털어 이 땅에서 굳건하고, 더 나아가서 ‘백도혈통’(百盜血統)의 돈가(豚家)가 연연세세 그걸 이어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의 평화는 곧 이 땅의 ‘국민’(國民)과 ‘인민’(人民)들이 다같이 ‘자유의 지옥(地獄)’ 문턱을 넘어서게 됨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엊그제 그 ‘으니’와 수뇌회담을 마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하신다는 이 나라 ‘군대’(軍隊)의 수장(首長)을 비롯하여 이 나라 정치집단 대표분들 중 다수가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공언(公言)해 왔다. 그런 이유로...

    ‘4·27[혹자는 “사기칠”이라고도 한다] 연극’을 계기로 ‘한반도 운전석’에 앉았다고 호사가(好事家)들은 짖어대지만, “왠지 ‘으니’의 대리운전기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시중(市中)의 우스개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옥(地獄)에 이르는 길은 수많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는 어느 미래학자의 예언(豫言)이 떠오른다.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