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몸통 한 가운데에 커다란 칼 박은 결정"

  •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 결정의 정치학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탄핵을 찬성했던 사람들은 이번 탄핵 인용이 국민주권의 승리이며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견제이고 경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행위라고 칭찬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적으로 볼 때는, 국민주권의 무차별적인 표출을 만연하게 만들며, 권력분립 원칙의 훼손이며, 자유시장 경제의 위기로 연결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국민주권의 의미가 왜곡된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는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투표를 통하거나 혹은 대표자를 통해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국민의 일부가 거리에 나와 직접 목소리를 내며 주권행사를 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폭동이나 반란이며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원칙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 탄핵재판 과정을 보면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거나 국민의 주권행사를 방해했다는 등의 표현이 자주 보여, 국민주권의 의미를 과대하게 해석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소위 ‘촛불 민심’이라는 망령이 헌법재판소를 뒤덮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국민주권 개념의 왜곡이라 본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국민이 선거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국민 일부의 직접적인 주권 행사 표시를 통해 이들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국민이 특정한 정책 추진에 반대하거나 정치적 의혹에 대해 항의하며 길거리에 나올 때, 이것이 곧바로 국민주권의 표출이라고 인식될 위험이 커졌다.

    대통령 직책의 권한이 크게 약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의 탄핵은 그 내용과 형식을 살펴볼 때 사실상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안 결의다. 불신임안 결의란 원래 의원내각제 정부에서 의회가 내각에 대해 불신임을 표하는 행위다. 즉 의회가 뽑은 내각을 의회 자신이 다시 불신임하는 것으로, 의회가 내각에 부여했던 신임을 철회하는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인용은 우리나라 정치체제가 의원내각제 쪽으로 한 걸음 옮겨가는 행동이다.

    대통령제란 국민의 주권이 한편으로는 대통령 선거를 통해 표출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표출되는 정치체제다. 이렇게 대통령과 국회 모두 국민의 주권의 표출을 그 정당성의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즉 ‘견제와 균형’의 정치체제다. 사실상 국회의 불신임안이 통과된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분립 원칙은 그 일부가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 국회는 대통령 뿐 아니라 국무총리, 장관, 각급 법원의 법관, 각급 고위공무원에 대해서 역시 탄핵의 형식을 빌어, 이런 정치적 의미의 불신임 결의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정한 중대범죄 사실의 확인 없이 탄핵될 수 있다는 이 사실로 인해, 각급 고위공무원은 자신의 직무수행에 있어서 국회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의원내각제의 모습이다.


  •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의회가 내각을 구성한다. 국회의원들이 곧바로 정부 고위관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고 또 다른 내각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입법권과 행정권의 일체화이다. 하지만 입법권과 행정권의 분립을 전제로 하는 대통령제 아래서 국회가 대통령을 불신임해 버리는 권한이 인정되면, 이는 국회의 부당한 행정권 침해이며 국회독재가 된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이 탄핵 인용이 한국 정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몸통 한 가운데에 하나의 커다란 칼을 박아 넣은 결정이라는 점이다. 최근 어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몸에 큰 칼이 박혀있는 도깨비가 수백년동안 살면서 고통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앞으로 한국 정치는 이 탄핵인용이라는 큰 칼이 가슴에 박힌 채로 수십년 어쩌면 수백년 살아야 한다. 국론분열의 확실한 단절면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헌법재판소가 좀더 시간을 두고 판단했더라면, 앞으로 정치갈등이 조금은 순한 성격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태에 간여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재판이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이며, 당연히 조사하여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헌재의 조급한 결정은 사실 관계 파악을 영영 땅 속으로 묻어버렸다.

    객관적으로 밝혀진 사실관계에 대한 공동의 인식이 약하면 약할수록, 쟁투의 강도는 커진다. 물론 형사재판은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인용이 결정된 이후라는 것이 이 재판의 진행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아무리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한다 하더라도 탄핵반대측은 재판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언론의 무차별적인 의혹 폭로와 수사관식 보도 행태 역시, 이번 헌재 인용결정 덕분에 그 어떤 책임추궁도 없이 그냥 잊혀지고 말 것이다.

    또한 헌재가 8명의 상태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탄핵반대측은 앞으로도 계속 이 헌재 결정의 합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헌재 스스로가 자신의 권위를 깎아 내렸으니, 개헌이 실시된다면 헌재는 퇴출 1순위다.

    재벌의 해체가 가속화될 것이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행동이 대통령 탄핵의 주요 요인으로 인지된 이상, 삼성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재벌의 행동에 대해 더욱 엄격한 통제의 기준이 생길 것이며, 재벌을 해체하라는 여론이 더욱 강력해 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움직임은 자유시장 경제의 근본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다시 한번 요약해 보자. 탄핵을 찬성했던 사람들은 이번 탄핵 인용이 국민주권의 승리이며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견제이고 경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행위라고 칭찬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적으로 볼 때는, 국민주권의 무차별적인 표출을 만연하게 만들며, 권력분립의 원칙이 훼손되며, 자유시장 경제의 위기로 연결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헌재가 사실관계 파악을 기다리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나머지, 이 결정은 한국정치의 가슴 한 가운데에 깊이 박힌 큰 칼이 되어,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국론분열의 단절면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