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추진 단계에서 발빠른 대응, 논란 선제 차단… "대선 출마 현실화 성큼 다가온 느낌"
  •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사진)이 지난 6월 2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즈 국제광고제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칸(프랑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사진)이 지난 6월 2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즈 국제광고제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칸(프랑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이른바 '반기문 예우법' 입법이 추진되는 것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발빠른 대응을 보이며 선을 그었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는 7일(한국시각) 보도자료를 통해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이 추진하는 것으로 보도된 '전직 국제기구 대표 예우법'과 관련해, 반기문 총장은 이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아는 바도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반기문 총장을 보좌하는 김원수 유엔사무차장실 관계자가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에 전달했고, 한국대표부는 이를 보도자료로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반기문 총장 측에서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평소 국내 정치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둬온 반기문 총장이 개개의 국회 입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반기문 총장은 리비아 내전과 북아프리카로부터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 중이다. 반기문 총장 측의 입장은 반기문 총장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피에트로 그라소 이탈리아 상원 의장, 라우라 볼드리니 이탈리아 하원 의장 등과 연쇄 회담을 가지는 공사다망한 와중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이례적이다.

    그만큼 반기문 총장이 국내 여론 동향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국제기구대표예우에관한법률', 이른바 '반기문 예우법'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는 게 알려진 것은 불과 나흘 전인 지난 3일이다.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이 이 법안을 대표발의하기 위해 동료 의원실에 서명 요청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법률안 내용에 따르면 전직 국제기구 대표는 임기 종료일부터 해당 국제기구 대표 재임 기간과 동일한 기간 동안, 사무실과 함께 비서관·운전기사 각 1인을 제공받게 된다.

    국민들이 사회지도층의 이른바 '특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예우법안이 반기문 총장에게 결코 유리할 게 없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반기문 총장이 설혹 내년 12월 대선에 실제로 출마한다 하더라도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무실이나 비서관, 운전기사가 없어서 출마하지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되레 야당 후보로부터 공격의 빌미만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문제는 이 법안을 추진하는 당사자인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의 지역구가 충북 충주라는 점이다. 반기문 총장의 연고가 충북일 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충주는 반기문 총장이 고등학교(충주고)를 나온 핵심 연고지다. 자칫 반기문 총장과 이종배 의원 사이에 어떠한 의사연락이나 교감 하에서 '예우법'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반기문 총장이 선제적 대응을 통해 논란을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요청하지도 않았고 아는 바도 없다'고 밝힌 것은 외교 수사에 관한 관례를 참조하면 일정한 수위의 불쾌감까지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우법'을 둘러싼 논란이 자칫 반기문 총장 본인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표현을 고심하다 나온 것으로 관측된다.

    이로써 '예우법' 입법은 동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인설법(爲人設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실상 반기문 총장 1인만을 겨냥했던 법인데, 당사자가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다만 '예우법' 입법 추진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게 됐지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반기문 총장이 세계 각지로 공무 출장을 다니는 와중에도 국내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국내의 입법 추진 등 정치 관련 사항을 세심히 모니터링하고 일정한 정무적 판단도 발빠르게 내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지난 추석에 미국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우상호·박지원 3당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내년) 1월 중순 이전에는 (국내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조기 귀국을 통한 대권 경쟁 합류를 시사한 데 이어, 새누리당 조원진 수석최고위원이 "국내 정치에 대한 부분들도 관심을 갖고 보셨으면 한다"고 요청한대로 국내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이 입증됐다.

    대선 출마 현실화가 성큼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국내 정치인들도 파문으로 번질 수 있는 작은 사건을 접하자마자 사나흘만에 선제대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해외에서, 그것도 로마에 출장 중인 반기문 총장의 빠른 대응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대선 출마 준비가 이미 상당한 궤도에 올라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