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헌법적 공백 방치하는 우리 국회, 또 한눈 팔 일 생겼나
  • ▲ 여야 당대표까지 포함해 셀 수 없이 회동을 거듭한 공직선거법 관련 협상이 결실을 맺을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4일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양당 지도부 선거구 협상에 앞서 정개특위 여야 간사인 이학재 의원과 김태년 의원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여야 당대표까지 포함해 셀 수 없이 회동을 거듭한 공직선거법 관련 협상이 결실을 맺을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4일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양당 지도부 선거구 협상에 앞서 정개특위 여야 간사인 이학재 의원과 김태년 의원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가 세상 만사를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시대다. 우리나라가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의 시대로 이행하면서 수반되는 당연한 변화다. 그러나 아무리 삼천리 강산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 하나하나까지도 입법부의 관심 영역 밖인 게 없다지만, 자기 할 일을 등한시하고 있는 국회가 딴청을 피며 난리굿을 하는 모습에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개성공단 잠정 중단에 여야 정치권이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소회다. 그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된 게 아니라, 북한의 도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넘어 마침내 실제 군사적인 모험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헌법 제37조 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같은 조문 후단에서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재산권은 자유권이나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에 비해 제한의 여지가 넓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 잇단 도발을 하고 있고, 5월 당대회를 앞두고 추가적인 고강도·저강도 도발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개성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이 '인질화'될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고, 북한 김정은 체제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끊으며,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에 더욱 강도 높은 제재를 하기 위해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고육책을 내리게 됐다.

    이는 헌법 제37조 2항에 규정된대로 국가안보와 공공복리를 위해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재산권을 제한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헌법에 합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산권이 헌법적으로 제한된 부분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입법적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입법은 사소한 것이라도 선례로 남는다. 비정상국가인 북한 김정은 체제의 속성상 남북관계는 언제든지 냉탕온탕을 오갈 수 있다.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든 북한에 그릇 투자한 재산권 손실을 국고에서 무한 보장해준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면 안 된다.

    개성공단이 폐쇄가 될지 일시적인 운영 중단으로 끝날지도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무슨 국가비상사태라도 난 것처럼 보상에 관한 특별법 입법이라는 말이 나오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맞장구를 치는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국민의 혈세(血稅)가 투입될 보상에 대해서는 당분간 냉각 기간을 갖고, 국민 여론과 국회의원들이 모두 냉정을 되찾은 후에 숙려를 거쳐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되레 국회는 정작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은 1년 가까이 끌고 있지 않은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1차 회의가 지난해 3월 19일에 시작됐는데, 1년 가까이 경과했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여야 양당의 당대표까지 동원돼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회동을 거듭한 결과 나온 합의는 지역구 의석을 7석 늘리고 비례대표를 7석 줄인다는 한 줄이다. 여야가 개성공단 중단 때 보여준 호들갑에 비춰보면 이 정도 한 줄 합의는 이틀·사흘, 길어도 일주일이면 할 수 있을 법한데, 왜 1년 가까이 걸리고 그나마도 결론을 내지 못한 걸까.

    감던 머리도 움켜쥐고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씹고 있던 밥도 뱉으며 뛰어나와 처리해야 할 법한 공직선거법을 대하는 자세는 여유롭고 한가하기 짝이 없는데, 정작 냉정을 유지한 채 숙려기간을 거쳐 입법해야 할 이른바 개성공단보상특별법은 당장 하지 않으면 무슨 큰 사달이 날 것처럼 허우적거리니 실소가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공직선거법은 이른바 헌법부속법령이다. 헌법은 제41조 3항에서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직접 명령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난해 12월 31일로 효력이 상실된 공직선거법을 입법하지 않는 것은 헌법의 명령을 국회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속해 있는 입법부 자체가 위헌적인 헌정 체제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서는 별반 심각하게 여기는 기색도 없다가, 헌법의 규정에 따라 국가안보·공공복리를 위해 취해진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서는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모습이 한심스럽다.

    국회는 이른바 개성공단피해보상특별법을 만든다고 호들갑을 떨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공직선거법이나 입법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을 입법할 때까지는 아무런 입법도 하지 말고 배수진(背水陳)을 친다는 자세로 헌법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교황을 뽑는 선거를 콘클라베(Conclave)라고 한다. 후보자를 호명한 뒤 추기경단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하는데, 이 수에 미달하면 해당자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호명 절차를 반복한다.

    3분의 2 이상의 지지라는 요건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12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가 선종한 이후에는 추기경단이 세월아 네월아 대립한 채 지리한 호명 절차만 반복됐다. 이 때문에 33개월 동안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지 못하고 사도좌가 공석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마침내 분노한 시민들이 궐기해 추기경단을 한 곳에 몰아넣어 감금했다. 감금한 추기경들에게 빵과 물만 주면서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는 나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덕택에 마침내 그레고리오 10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됐다.

    국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공직선거법 입법은 제쳐둔 채 개성공단피해보상특별법 따위에 한눈을 파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콘클라베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국민의 참정권과 선거권, 예비후보들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초유의 헌법적 공백 사태를 이제는 끝장내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정개특위 여야 간사인 이학재 의원과 김태년 의원을 국회의 적당한 골방에 몰아넣고 자물쇠를 걸어잠근 뒤 빵과 물만 주면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할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사람이 비단 필자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