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건설족이 구축한 대규모 SOC로 재정적자 신음… 타산지석 삼아야
  • ▲ 2016년도 예산안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016년도 예산안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19대 국회 마지막 예산안이 결국 각자의 텃밭에서 총선 승리를 노린 정부·여당·야당의 '짬짜미'로 점철됐다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조짐은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부터 엿보였다.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예산 요구안이 기획재정부 심사 단계에서 4,225억 원 증액됐는데,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TK) 지역 예산이 집중적으로 늘어나 논란을 자초했다.

    대구지하철 1호선을 최경환 부총리의 지역구인 경산까지 연장하는 사업은 국토부가 당초 예산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기재부에서 288억 원을 편성했다. 이외에 대구순환고속도로 사업에 1,834억 원, 대구선 복선전철 사업에 2,251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기도 했다.

    부산과 강원도 강릉을 동해안을 따라 연결하는 동해선 철도 사업의 경우, 영남 지역 구간에 해당하는 부산~울산 복선전철 사업 예산이 당초 국토부가 요구한 2,300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 순증됐고, 포항~삼척 철도 건설 사업 예산도 4,600억 원에서 역시 1.000억 원 이상 늘어났다.

    정부 예산안이 적절하게 편성됐는지 심사해, 국민의 혈세(血稅)를 아끼고 조세 부담을 낮춰야 할 국회 심의 과정은 더욱 가관이었다.

    기왕 편성된 예산을 삭감하기는 커녕 특정 지역에 배정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기준치로 잡아, 다른 지역도 그만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국회 심의 과정에서 SOC 예산은 정부안에 대비해 오히려 2,800억 원이 다시 증가했다.

    그 중 동해선 철도 사업 중 기재부 심사 순증 대상에서 제외됐던 울산~포항 복선전철 사업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뒤늦게 '순증 막차'를 타고 3,639억 원에서 300억 원이 순증돼 3,939억 원으로 규모가 늘어났다. 포항영일만신항인입철도 건설 사업 예산도 473억 원에서 100억 원 이상 증액됐다.

    이렇게 TK 지역 예산이 부풀려지자, 다른 지역도 질세라 예산 추가 확보에 나섰다.

    강원도는 평창올림픽을 명분삼아 평창올림픽을 지원하기 위한 고속도로 신규 IC 건설 명목으로 35억 원을 신규 확보했으며, 평창올림픽이 개최되는 지역의 도시경관지원 사업 예산도 2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늘렸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영남·강원 지역 예산을 챙겼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 지역 예산 증액으로 맞불(?)을 놓았다.

    서해안 복선전철 사업 예산이 1.837억 원에서 500억 원 늘어나 2,337억 원이 됐고, 전남 보성~임성리 철도건설사업 예산은 25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두 배가 됐다. 호남선KTX 2단계 구간인 광주송정~목포간 고속화 사업은 550억 원에서 250억 원이 증액돼 800억 원이 됐다.

    군장산단인입철도 예산이 100억 원 증액되고, 광주~강진간 고속도로 사업이 72억 원 증액된 것은 '잔돈' 정도로 보일 지경이다.

     

  • ▲ 활짝 웃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시스
    ▲ 활짝 웃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시스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몸이 달아 있는 다른 지역 국회의원들도 예결특위·예산안소위·증액심사소소위 등 각 과정마다 '카톡 예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이 엿보인다.

    경의선 철도 문산~도라산 구간 전철화 예산이 10억 원, 월곶~판교 복선전철 사업 50억 원, 경기도 여주와 강원도 원주 구간을 복선화하는데 15억 원, 청주국제공항 평행유도로 건설 사업으로 188억 원의 예산이 추가 투입된다.

    물론 SOC 예산이라고 해서 마냥 색안경만 끼고 바라볼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호남선KTX 2단계 고속화 사업은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지금은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의 구간만 고속화돼 있기 때문에 어차피 2단계 사업을 통해 목포역까지 고속화 구간을 연장해야 KTX가 제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월곶~판교 복선전철 건설도 마찬가지다. 애초 경기남부권의 거점 역으로 설정된 광명역이 연결교통노선 불편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남·과천·안양·부천·시흥·안산·화성 등 경기남부권의 주요 도시들을 광명역과 연결되도록 하는 월곶판교선 건설은 오히려 더딘 감이 있다.

    가뭄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충남 보령댐 도수로 건설비 예산 신규 책정 234억 원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을 통해 저장된 금강 백제보의 풍부한 수자원을 충남 보령댐으로 연결해 충남 서부권 주민들이 겪고 있는 최악의 가뭄을 해결하고자 하는 이 사업은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예산 신규 배정을 마냥 책잡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SOC 예산이 마구 늘어난다는 데 있다. 철저히 국토 균형 발전의 청사진에 따라 심사해서 늘릴 것은 늘리고, 줄일 것은 줄인다면 누가 선량(選良)들을 탓하겠는가. 오히려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원칙도 뭣도 없이 '어느 지역에 배정된 예산이 얼마이니, 우리 지역도 그만큼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예산 배정과 증액이 이뤄지는 것은 망국(亡國)으로 가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내각총리대신이 '열도개조론'으로 대표되는 토건사업 붐을 일으킨 이래, 건설족(建設族)이라 불리는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SOC 예산을 마구 증액해 재정 적자가 심화됐다. 이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국가부채가 1,000조 엔(약 1경 원)을 돌파하기에 이르러, 손을 쓸 도리가 없는 늪 속에 빠져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고속도로의 경우, 거품경제 시기에 마구 건설하고 연장했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통행량이 크게 낮아 유지·보수에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고두고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총선 대비용 무분별한 선심성 SOC 예산은 철저히 걸러내는 옥석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