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두환-김대중 간 '은밀한 거래' 폭로
  • ▲ ▲ 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 장 회장은 자신이 “전두환·김대중 간 거래의 보증인 역할을 하면서 10여 년간 주식과 정치자금을 DJ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 ▲ 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 장 회장은 자신이 “전두환·김대중 간 거래의 보증인 역할을 하면서 10여 년간 주식과 정치자금을 DJ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폭로했던 장진호 전 진로그룹회장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생전 그가 남긴 발언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회장(63)은 지난 3일 베이징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지만 끝내 숨진 것으로 5일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도피생활을 이어왔다. 현재 그의 한국국적은 말소된 상태로, 2005년 캄보디아로 도피한 이후 2010년 중국으로 도피처를 옮겨 생활해 왔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주)진로 창업주 고(故) 장학엽(張學燁) 회장의 차남으로 1982년 진로에 입사했다.

    이후 그는 사촌형, 이복형과의 분쟁을 거쳐 진로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1988년에는 진로를 그룹체제로 개편, 사업다각화를 시도해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재계순위 25위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던 진로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지나친 사세 확장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넘지 못하고 창업 73년 만에 부도처리됐다.

    진로는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5년 10월 하이트맥주에 매각됐다.

    장진호 전 회장은 생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법·비리 정치자금에 관한 충격적 폭로를 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월간조선> 4월호에 실린 장 전 회장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전두환-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 은밀한 거래가 있었고,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진로그룹은 '정치적 희생양'이 돼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가장 큰 정치 보복을 당한 피해자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무현 정권은 2003년 기업정상화를 목전에 둔 진로를 강제로 법정관리시켰다. 그리고 이중 삼중으로 세금을 물리는 등 제가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전두환-김대중 간 거래의 보증인 역할을 하면서, 10여 년간 주식과 정치자금을 DJ에게 전달했다. 규모는 500억~600억원이다.”

       -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간 불법·비리 정치자금 의혹의 눈길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지만, 검찰 수사 선상을 교묘히 비껴가거나 무마되는 등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겨 왔다.

  • ▲ ▲지난 3일 심장마비로 숨진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생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J에게 정치자금과 주식 등을 건넸다고 고백했다.  ⓒ 연합뉴스
    ▲ ▲지난 3일 심장마비로 숨진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생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J에게 정치자금과 주식 등을 건넸다고 고백했다. ⓒ 연합뉴스

     

    1967년 6월 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7대 총선에 출마하며 목포역 광장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통해 자신의 '청렴함'을 강조한 바 있다.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하지만 장 전 회장이 고백한 내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장 전 회장은 "전두환-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간의 '은밀한 거래'가 있었고 자신은 그 중간에서 담보물로 주식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며칠 후 대검찰청에서 자신을 호출했고 평소 안면이 있었던 윤 모 수사관이 다짜고짜‘새로운 각하의 부담을 줄여드려야 한다. 정리하자’고 말했다"며 "무려 1년 8개월간 정치보복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일주일에 3일씩 검찰과 안기부에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그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그 기간에 가택 압수수색도 5번이나 받았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DJ가 나를 조사하라고 두 번이나 그랬더라. 그러니까 1년8개월 동안 계속 족치고 조져댄 것이다.”


    장진호 전 회장은 5공 초창기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DJ를 사형시키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자, DJ가 정치활동을 재개할 경우,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장치로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 ▲ ▲ 지난 2003년 마포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에서 장진호 진로그룹 전 회장이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 지난 2003년 마포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에서 장진호 진로그룹 전 회장이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면서 그는 담보물로 DJ 측에 (주)진로 보유 지분 절반을 양도 후 매년 일정 정도의 정치자금을 줬고, 임춘원 의원이 그 주식을 관리하고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임춘원 의원은 12·13·14대 야당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80년대 'DJ 자금책', '비자금 관리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71년 윤보선, 장준하씨와 함께 국민당을 창당했고, DJ와는 70년대 장준하씨의 비밀연락책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장 전 회장은 "84년부터 92년까지 DJ측에 정치자금을 제공해 왔다" "처음엔 30억원 정도로 얘기가 있었는데, 진행하다 보니까 보통 연간 40억원, 많이 갈 때는 50억원이 갔고, 다 합치면 500억~600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임 의원은 자신이 소유한 '동교상호신용금고'와 '명동 서울증권 매장' 등을 장 전 회장으로 전달받은 돈의 '돈세탁' 창구로 이용했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불법 정치자금의 내막은 DJ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 전 회장은 그 근거로 임 의원과 대화한 내용을 밝혔다.

    “‘DJ와 의논하고 합의해서 진행하는 일’이라고 임춘원 의원이 얘기했다. 한번은 임 의원이 ‘DJ가 너무 많이 요구해서 힘들지만 내 선에서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장 전 회장의 주장은 구체적인 검증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DJ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왔으면서도 '청렴'을 내세운 '위선자'의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서 지난 2009년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도 “김대중 정권 실세들이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20조원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번 장 전 회장의 사망을 계기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비자금’ 의혹에 대한 여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