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사각 아니라 원형, 우린 안전”취재결과 “덮개 규격, 하중강도 강제력 있는 기준 없어 권고만”
  • ▲ 지난 5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분당선 시청역사거리 왕복 10차선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정모(42·여)씨가 공동구 연결통로 4.6m 아래로 추락했다.ⓒ 사진 경기소방본부 제공
    ▲ 지난 5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분당선 시청역사거리 왕복 10차선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정모(42·여)씨가 공동구 연결통로 4.6m 아래로 추락했다.ⓒ 사진 경기소방본부 제공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이에게 도로에 있는 맨홀 뚜껑이나 하수구 덮개, 환풍구로는 절대 다니지도 말고 올라가지도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다.

       - 서울시 마포구 김O희씨


    평소에는 회사 건물 주차장에 있는 환풍구 위로 아무렇지도 않게 차량을 주차했으나, 판교 환풍구 사고 이후, 환풍구 위로는 절대 차량을 주차하지 않는다. 회사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 서울시 서대문구 김O현씨


    싱크홀이 다수 발견된 잠실은, 멀쩡하던 도로가 일순간에 푹 꺼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값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요즘은 마음 놓고 다닐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 바닥만 보고 다닐 정도로 불안하다.

       -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 이O경씨   


    2014년 7월 24일, 경기 의정부 신곡동 싱크홀 추락 사고(부상 1명).

    2014년 10월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 환풍구 붕괴 추락 사고
    (사망16명, 부상 11명).

    2014년 11월 5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공동구 추락 사고(부상 1명).


    대한민국이 추락사 공포에 벌벌 떨고 있다.
    지난 넉 달간, 위에 예시한 3건의 추락사고로만 2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5일 발생한 수원 공동구 추락사고는, 2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가 있은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발생해, 대한민국 안전불감증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공동구는 통신선이나 가스관 등을 보수할 때 이용하는 공간으로 도로 지하에 설치돼 있다.
    사고현장 공동구는 통신설비를 위한 시설로 쓰였다.

    이번 사고는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시청역사거리 왕복 10차선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정모(42·여)씨가 공동구 연결통로 4.6m 아래로 추락하면서 일어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정씨는 공동구 연결통로를 덮고 있던 가로 1.4m, 세로 0.6m 크기의 사각 철판 덮개 3개 중 1개가 밑으로 내려앉은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정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남부경찰서 조사결과, 사고현장 주변에는 백화점과, 농협, 대형 커피숍 등이 위치해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곳이었지만, 시공업체는 맨홀 덮개의 고정 장치조차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공업체는 횡단보도 맨홀 덮개의 구조를 지난달 말 임의로 변경했으나, 감독관청인 구청이나 시청에는 보고도 하지 않았다.

    공동구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해야 할 감독기관 역시 이 같은 구조변경 사실을 알지 못했다.

    판교 환풍구 사고가 일어난지 3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재(人災)가 원인인 된 또 다른 대형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감독기관과 시공업체의 고질적 안전불감증은 비판을 면키 어렵다.

  • ▲ 지난 8월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 도로에서 발견된 싱크홀.ⓒ 사진 연합뉴스
    ▲ 지난 8월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 도로에서 발견된 싱크홀.ⓒ 사진 연합뉴스


    ◆ 인구 1,200만 서울시는 다를까?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동구는 목동, 여의도, 가락동, 개포동, 상암동, 상계동에 설치된 모두 6개다.

    서울시는 6개 공동구에 원형 맨홀 덮개(외경 648mm)를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고가 난 수원과 달리 서울시 맨홀 덮개는 모두 원형으로 제작돼 빠질 염려가 없다"며, "통상적으로 차량과 시민이 빈번히 다니는 곳은 혹시 모를 추락사고에 대비해 원형 멘홀 덮개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도, 구조상 공동구 입구를 원형으로 제작할 수 없거나, 행인과 차량 통행이 없는 장소에는 사격형태의 맨홀 덮개를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환풍구와 마찬가지로 공동구 맨홀 덮개도 규격과 하중 강도에 관한 규정이나 관리감독이 매우 부실하다는 사실이다.

    취재결과 공동구 맨홀 덮개의 경우, 해당부서가 안전사고 가능성 등을 판단한 뒤 공사업체에 시정사항을 권고할 수는 있지만, 강제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풍구 못지 않게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공동구 맨홀 덮개에 관한 안전관리가, 사실상 민간 공사업체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특히 맨홀 덮개의 구조와 강도, 하중능력 등에 관한 구속력 있는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혹시 모를 인명 사고에 대비해 도로에는 사각 맨홀 덮개 대신 원형 덮개 사용을 권유하고 있다. 다만 법규로 강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이번 공동구 추락사고에서 보듯이 공사업체가 맨홀 덮개를 임의로 변경해도, 마땅한 규정이 없어 법적으로 제재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9월 4일, 민선 6기 서울시장의 최우선 과제는 ‘안전’이라며, [안전한 도시]를 4대 시정 목표 가운데 첫 번째로 꼽았다.

    이에 따라 서울시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시의 역량을 집중해, 체계적인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형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사고 유형별로 ‘황금시간 목표제’를 도입,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그러나, 도심 곳곳에 설치된 공동구 덮개에 관한 기준조차 없다는 사실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공언을 무색케 한다.

  • ▲ 지난달 17일 오후 지하 환풍구 덮개가 붕괴돼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사고 현장.ⓒ 뉴데일리 정재훈기자
    ▲ 지난달 17일 오후 지하 환풍구 덮개가 붕괴돼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사고 현장.ⓒ 뉴데일리 정재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