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회 이승만 포럼]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 홀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이승만과 러일전쟁]을 주제로 이주천(원광대 사학과, 이승만포럼 공동대표)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이승만 포럼]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연구하는 포럼으로 (사)건국이념보급회(사무총장 김효선)가 주최하고, 뉴데일리(회장 인보길)와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가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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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포럼] '공짜'로 얻은 광복은 '가짜'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1894년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려고 청나라를 꺾었다.(청일전쟁) 1904년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는 대한제국의 기대도 꺾었다.(러일전쟁) 일본은 한반도에서 두 번의 전쟁에 연달아 승리하며 동아시아의 맹호로 성장했다. 

    1905년 7월27일, 일본은 미국과 테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었다. 한반도 차지를 위한 외교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1905년 8월12일, 일본은 영국과도 동맹을 맺는다. 1905년 11월18일, 일본은 대한제국과 한일협상조약(을사늑약)을 체결한다. 그렇게 한반도에 살던 백성들은 나라를 잃었다. 

    일본은 두 번의 전쟁과 美·英 등 강대국과의 외교로 한반도를 차지했다. 자신의 나라,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그 순간, 29살의 청년 이승만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존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이미 미국은 일본과 테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은 상태였다. 청년 이승만의 순진했던 첫 외교는 그렇게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던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조선(대한제국)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일본인이 됐다. 1945년 8월15일까지 조국을 잃은 백성들은 빼앗긴 들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봄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1945년 8월15일 봄은 왔지만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온 '공짜' 광복이었다. 외교독립운동과 무장독립운동을 펼쳤던 한인들의 노력은 그 뜻은 위대했지만 반향은 경미했다.    

    '공짜'는 '가짜'다. 한반도는 공산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와 자유민주주의 미국의 냉전으로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두 나라의 냉전은 한반도를 반으로 쪼갰다. 1948년 8월15일 한반도의 남쪽의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를 세웠다. 

    1945년 8월15일부터 3년간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한반도 유일의 독립 국가 '대한민국'은 73살의 이승만의 노련한 외교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승만은 통일 대한민국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건국 후 66년간 분단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66년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지만 핵을 든 북한을 평화와 자유의 이름으로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사)건국이념보급회(사무총장 김효선)가 주최하고 뉴데일리(회장 인보길)와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가 후원하는 이승만포럼. 21일 서울 중구 정동 정동제일감리교회 아펜젤러홀에서 그 42번째 포럼의 주제는 '통일을 위한 외교에 이승만의 지혜가 필요하다'였다. 발제자는 남시욱 세종대학교 석좌교수였다.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군정의 지배를 받게 됐다. 하지만 건국의 과정에서는 이승만의 외교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를 통해 통일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교는 타국의 힘을 빌려 평화를 유지하려는 의존적인 행위가 아니다. 외교 독립을 주장했던 이승만의 외교를 연구한 사람이라면 의존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된다. 지금 학계에서 이승만 리더십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는 거의 없다.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연구가 시급하다. 

    이승만은 29살에 '독립정신'이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이미 외교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우리들은 그의 리더십을 연구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끄는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이런 적극적 외교가 동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보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시각이 모두 다르다. 우리의 통일을 우리의 창의적인 외교로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떤 나라도 우리 통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 세계에 나설 외교 인재를 양성하는 게 지금 꼭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의 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승만의 리더십을 연구한다면 스스로 부족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아직 소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는 듯 하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후 눈이 부신 성장을 했다. 그간 외교라고 할 것도 없이 다른 국가에 의존하며 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전세계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설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승만의 리더십을 연구한 젊은 인재들이 국제 무대로 나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는 독립을 공짜로 얻었다. 1948년 건국을 하면서 광복을 맞았고 지난 66년간 선배들이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제 젊음이 나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