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가 돌아왔다, 자백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

    [정치 경험 없는 게 장점] 호언 생생!
    요즘은 차근차근 밟아가려는 자세
    암스트롱은 과학기술자 본업에 충실…
    정치 나섰던 글렌도 우주비행사로 마감!
    지금이라도 본분 지키는 정치 해야…
    새 정치 첫걸음은 자기오류 시정부터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 안철수가 돌아왔다.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뛰어들어 동분서주한다.

    그는 며칠 전 "이런 과정을 안 거치고 정치했다면 실수를 많이 할 뻔했다"며 "(대선) 당시에는 공중에 붕 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그 얘기를 들은 필자는 "그걸 이제 아셨는가?" 하는 허탈한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러나 곧 (안씨 본인도 일부 인정하듯이) "이렇게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를 달리는 분이 대통령이 됐을지도 몰랐잖아?" 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은 구름 위에 붕 떠 있을 때 쓴 것인 셈이다.

    필자는 작년 대선에서 안씨에게 "지름길보다는 좀 더 먼 길이 낫다"(<조선일보> 아침논단 2012년 11월 23일자)는 조언과 함께 정치적 경험과 식견을 더 쌓을 것을 주문했다.
    내 글을 읽고 결심했을 리는 없지만, 공교롭게도 그 글이 나간 날 저녁에 안씨는 후보 사퇴를 했다.

  • ▲ 돌아온 안철수, 그러나 아직도 한참 멀어보인다.ⓒ
    ▲ 돌아온 안철수, 그러나 아직도 한참 멀어보인다.ⓒ


    안씨는 요즘 자신의 경험 부족을 절감하며 전과는 달리 밑에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려는 자세를 보인다.

    그렇다면 대선 때에 "정치 경험이 없는 것이 장점"이라고 호언했다가, 이제 와서 정치 경험을 쌓겠다는 모순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과거의 치기(稚氣) 어린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에겐 안씨를 볼 때마다 대비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안씨보다 훨씬 더 높은 위상을 가졌던 김종훈 전 미래부장관 내정자도 그중 하나지만, 더 큰 의미를 갖고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다.
    세계사에 이름을 확실히 남긴 두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존 글렌(John Glenn)이다.
    두 사람은 우연히도 같은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6·25전쟁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같이 활약한(각각 78회와 63회 출격 기록)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 ▲ 닐 암스트롱의 '인류 최초의 달 착륙'
    ▲ 닐 암스트롱의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작년 8월에 타계한 암스트롱은 1969년 달에 첫걸음을 디딘 인류 역사의 영웅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 되길 원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신시내티 대학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등 과학기술자로서 본업에 충실하며 조용한 생애를 살다가 조용히 타계했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더 빛난다.
    물론 그가 정치에 나섰어도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글렌의 행보는 약간 달랐다.
    1962년 2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비행하고 귀환한 뒤 그가 누린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펼쳐진 그의 퍼레이드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색종이가 뿌려졌다.
    그 후 본업인 군인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다가 해병대 대령으로 전역한 뒤 정치에 뜻을 품고 지역 정치부터 시작했다.
    상원의원 예비 경선에서 패배를 맛보기도 했지만,
    결국 1974년 오하이오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고 미국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정치가 중 하나로 차근차근 성장했다.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가 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의 마지막 상원의원 임기 말인 만 77세라는 고령에 우주 비행사로 자원하고 합격해서, 1998년 10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승선해 최고령 우주 비행사로 기록됐다.
    우주 비행을 하는 도중에 상원의원 임기 24년을 끝내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은퇴 세리머니를 갖기도 했다.
    2012년엔 오바마대통령에게서 국가 최고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수여받았다.

    안씨는 이미 암스트롱이나 글렌의 길을 가기엔, 너무 엇나갔다.
    개인이나 사회로서나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능력 이상의 일은 벌이지 말라.
    정치에선 차근차근 정도(正道)를 걷고, 혹시 원래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낙담하지 말라.

    당을 만들지도 당에 입당하지도 않고 혼자 하는 정치는 한계가 있다.
    성공한 기업가 출신으로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로스 페로(Ross Perot)도 처음엔(1992년) 무소속으로, 다음엔(1996년) 자신이 급조한 <개혁당>으로 대선에 임했지만,
    두 번 다 한참 처진 3등에 머물렀다.
    페로도 <개혁당>도 정치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안씨는 자신의 행적을 점잖게 윤색(潤色)하고 선전하는 능력이 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듯도 하다.
    안씨의 과거 군 입대 에피소드 허구는 아직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금성출판사) 등에 버젓이 실려 있다.

    진정한 정치를 하려면 이런 낯 뜨거운 오류부터 시정하고 새로이 시작할 일이다.
    김지하 시인도 [깡통]이라 표현했듯이,
    안씨의 정치는 아직 [치유] 차원에서만 맴돌고 원대한 비전과 냉철한 현실 인식은 행방불명이다.

    일례로 현 북핵 위기 상황에서 과거 안씨 특유의 어정쩡한 양비론이 먹혀들긴 어려울 것이다.
    안씨가 진정한 정치 지도자와 개혁가가 되려면, 훨씬 더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할 것 같다.
    채워 넣어야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안씨의 심기일전을 기대한다.

    <조선일보> 아침논단 : 201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