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33호>
    시민의식의 선진화, 빨리빨리에서 뚜벅뚜벅으로

    김 주 성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우리나라의 국가위상이 바뀌고, 국가전략도 바뀌고 있다. 2010년 10월에 G20 서울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의 20대 지도국가로 등극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가전략도 그 동안 추구해왔던 따라잡기 전략(Catch-up Strategy)에서 앞서가기 전략(Lead-up Strategy)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잡기 시대에 필요했던 시민덕목과 앞서가기 시대에 필요한 시민덕목은 다르다. 시민의식의 선진화란 따라잡기 시대의 시민의식을 극복하고 앞서가기 시대의 시민덕목을 함양하는 것을 말하리라.

      따라잡기란 1948년에 건국한 뒤 선진국을 모범 삼아 근대국가를 수립하고 자본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정치를 확립하려 했던 국가전략을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국민 모두가 허리를 졸라매고 빨리빨리 열심히 일해야 했다. 따라잡기의 시대정신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빨리빨리였다.

      빨리빨리는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바라보고 돌진할 때 필요한 덕목이었다. 단거리 경주를 할 때는 두리번거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 때는 눈앞의 목표에만 집중하여 줄 창 내달려야 한다. 빨리빨리 정신은 단거리 경주의 덕목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눈앞에 보이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저돌적으로 돌진해왔던 것이다.

      빨리빨리 정신에 젖어있던 우리들의 행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당일치기, 성적주의, 기계식 객관주의, 지엽주의, 단수정답주의, 1/n주의, 결과주의, 일정기간 쾌락을 유예하는 잠정적 금욕주의. 따라잡기 시대에는 유용했지만, 앞서가기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덕목들이다.

      앞서가기란 G20국가로서 세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국가전략이다.
    우리는 이미 앞서가기 위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12년에 우리는 대전과학단지에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세웠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일본의 이화학연구소와 같이 존재의 비밀을 캐는 기초과학연구소를 세운 것이다. 그 동안 응용과학에만 치중했어도 선진국을 대강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지 하지 않으면 앞서갈 수 없다.

      앞서가려면 남을 보고 따라가서는 안 된다. 앞서가려면 나 자신을 성찰하고 존재의 비밀을 캐내서 독창적인 길을 개척해야 한다. 나 자신과 존재의 세계에 대한 성찰은 빨리빨리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먼 길을 떠날 때처럼 찬찬히 살피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한다. 앞서가는 것은 목적지를 미리 알 수 없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을 수 없고 실패를 발판 삼아 뚜벅뚜벅 성공에 이르러야 한다.

      앞서가려면 따라잡기 행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당일치기보다는 평소에 준비해야 하며, 성적보다는 실력을 쌓아야 하고, 기계식 객관을 강요하기 보다는 다양한 주관을 인정해야 하고, 지엽적인 것 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해야 하고, 정답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고 때에 따라서는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1/n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업적에 따라 달리 나누어야 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하며, 잠정적 금욕주의로 쾌락을 유예시키기 보다는 건전한 쾌락으로 절제된 금욕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빨리가기의 빨리빨리 정신에서 멀리가기의 뚜벅뚜벅 정신으로 시대정신을 바꾸어야 한다. 뚜벅뚜벅 멀리가기의 지혜를 쌓는 것이 바로 시민의식을 선진화하는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그러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추구하던 빨리빨리의 조급성을 탈피하고 차근차근 멀리보고 남을 배려하면서 뚜벅뚜벅 함께 걸어 나가야 한다.

      남들과 함께 가려면 기본적으로 정직해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고, 법을 지켜야 한다. 선진국을 따라잡자 우리에게는 앞서가기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앞서가려면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데 필요한 성숙한 시민의식,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선진화된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