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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과 어둠’, ‘선함과 악함’, ‘삶과 죽음’ 등과 같이 양극의 충돌에서 생겨난 심리적 공간 또는, 경계에 대한 관심을 회화와 설치작업으로 표현해 온 작가 이명진의 개인전 ‘밝은 방’이 오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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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방’은 20세기 중엽 프랑스의 평론가인 롤랑 바르트의 책 제목이자 사진기술이 나오기 전 거울 또는 현미경을 이용하여 물체의 상을 일시적으로 종이나 화판 위에 비추어 윤곽선을 그리는데 사용하였던 장치의 이름이다.이 작가는 어두운 상자 안에 작은 구멍을 뚫어 외부의 빛을 받아드려 대상을 데려오는 카메라의 구조에서 현재와 과거 사이에 벌어진 틈새로 존재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을 떠올렸으며 어떠한 것에도 속하지 않는 그 경계를 ‘빈 공간’과 ‘ 구멍 난 곳’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작가와 같은 나이의 엄마의 모습, 파고다 공원 벤치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길가에 앉아 강아지와 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등이 담긴 옛 사진 속에서 공간 뿐 아니라 순간순간의 ‘삶의 틈’을 보았고 고통 속에서도 지속되는 우리의 삶의 틈 어딘가에 있을 ‘밝은 방’을 작품 속에서 찾아가고 있다.
- 작가노트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사진들을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간혹 현실의 틈에 존재하는 도 하나의 ‘방’처럼 느껴지는 사진들이 잇는데 사진 속 사람, 공간 상황들을 떠올리다보면 비현실처럼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카메라는 라틴어로 방이라는 뜻이다.어두운 상자 안에 구멍을 뚫어 외부의 빛을 받아드려 대상을 데려 올 수 있다는 사실은 사진 찍는 법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에겐 정말로 놀랍고 마술 같은 일이다. 그래서 사진 속 공간이 ‘방’으로 인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사진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 벌어진 틈에 존재하고 있는 ‘빈 공간’과도 같다. 그것은 어두운 방의 구석에서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온전히 받은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