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가, 언론인, 독립운동가, 자유혁명가, 건국-호국의 지도자 19일 오전 10시, 서울현충원에서 강창희 의장 등 참석한 가운데 열려
  • 종북좌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故박정희 대통령일까? 아니다! 그들의 적화통일을 가로막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가장 싫어한다. 때문에 건국전부터 ‘독재자 딱지’를 붙여놓고 지금까지 그를 중상모략하는 일을 계속한다.

    우리나라 사람 중 처음으로 박사를 받아 대통령 때에도 ‘박사’로 불린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소련의 국제공산주의를 신식민주의 패권으로 규정, 선전선동의 위선과 폭력성에 대해 경고했다.

    우남 이승만 박사는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출생했다. 18세까지 과거시험에 매년 응시했으나 부정부패로 실패, 배재학당에 입학했다.

    1896년 이승만 박사는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 협성회보(協成會報)를 발간하여 주필(主筆)로 왕정개혁을 요구하며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신문등 주간지로 만족할 수 없던 그는 한국최초의 민간일간지 매일신문(每日新聞)을 창간, 주필로서 일본의 간섭과 러시아의 국토침탈을 공격하였다.
    입헌군주제를 제창하여 고종이 이를 수락, 국회형태의 중추원에 24세 청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부정부패로 썩은 수구내각 대신 개화내각을 주장하다가 반역죄로 몰려 1898년 투옥되었다. 사형이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러일전쟁이 났을때 이승만 박사가 쓴 책이 최근 다시 조명 받고 있는 ‘독립정신’이다.

    이승만은 ‘독립정신’에서 국가의 개방, 자유무역, 외교와 친선, 국권과 자유권, 독립국가의 필요조건들을 제시하고, 무지한 백성의 힘을 길러야 부국강병을 이룬다고 설파하였다. 그가 108년전에 그린 글로벌 자유경제독립국가의 청사진은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 그대로이다.

  • ▲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러시아를 패퇴시킨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하자 이승만은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독립수호 협력을 요청했으나 실패한 그는 1905년부터 조지 워싱턴大, 하버드大, 프린스턴大 등에서 수학하면서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옥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이승만은 YMCA활동을 하던중 일제의 압력을 피해 1912년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한국․태평양 신문’을 발간하는 한편, 서재필-안창호등과 협력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 한성임시정부 집정관총재가 되고, 상해(上海)에서 통합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하였다.

    1940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 박사는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웠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 뒤 10월 16일 귀국해 “뭉치고 엉키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 같이 하나로 뭉치자”는 유명한 연설로 국민들을 뭉치게 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 ▲ 6.25전쟁 당시 지프를 타고 전선을 방문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 6.25전쟁 당시 지프를 타고 전선을 방문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미국과 유엔 회원국들의 참전을 이끌어 내 우리나라를 지켰다. 이와 함께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한미 동맹의 초석을 놓았다.
    정부는 우남 이승만 박사의 공훈을 기리어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1960년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로 일어난 4.19 시위때 경찰 발포로 1백여명의 희생자를 낸 사실을 알게된 이승만은 "국민이 원하면 하야한다"는 성명을 내고 하와이로 건너가 1965년 7월19일 세상을 떠났다.

    국가보훈처는 7월 17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시고 초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놓으신 ‘우남 이승만 박사 47주기 추모식’을 19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이기수) 주관으로 연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강창희 국회의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정근모 前과학기술처 장관과 정부주요인사, 기념사업회원, 유족, 학생, 시민 등 350여 명이 참석한다.

    추모식은 국민의례, 기념사업회장의 인사말, 국회의장․국가보훈처장․前과학기술처 장관의 추모사, 추모공연, 분향 및 양자 이인수 박사의 유족인사 등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