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다음엔 뭘 하지?”
    SBS 토일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서이수(김하늘)과 키스를 나눈 김도진(장동건)이 던진 말이다. 장동건은 김하늘을 잡기 위해 밀당을 벌였다. 그런데, 그 밀당의 정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너무나 강렬히 끌렸기 때문에, 밀당도 처절하게 강렬했다. 자기 보다 다른 남자에게 더 끌리는 김하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장동건은 이런 대사를 날렸다.

    “혹시 우리 잤습니까?”
    “꾀 부리지 마요 나랑 잘 거 아니면.”
    “화난 건 알겠는데요. 잘 거 아니면 연락하지 마세요.”

  • 짐짓 바람둥이 행세를 했지만, 남자 입장에서 이런 대사는 벼랑 끝에 몰린 배수진의 처절한 투쟁이다. 저러다가 나를 저질이라고 생각해서 도망가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왜 없겠는가. 어쨌든 밀당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그리고 장동건은 김하늘과 첫 키스를 나눴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밀당이 격렬한 만큼 그 다음은 더 빠른 속도로 진하고 과감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이제 다음은 뭘 하지? 라는 남자의 고민은 그래서 극작가 김은숙의 고민이다. 동시에 신사의 품격을 보는 시청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극작가로서야 어떻게 해야 키스보다 더 강력하지만, 15세에게 호소할 수 있는 장면을 구성하느냐에 달렸겠다.

    시청자들의 고민은 이것이다. 이제 미남 미녀의 키스를 보았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키스 다음의 애정공세는 도대체 뭐가 있을 수 있을까? 너무 야하게 나오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저 드라마 끝나려면 한 달이 남았는데, 그 사이에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너무 판박이로 전개되거나, 일일 시트콤 처럼 대사만 남발한다면, 시청자로서도 참 지루한 일이다.
  • 극작가는 두 사람이 침대위에서 팔베개를 하고 잠을 드는 장면으로 암시만 주고 슬쩍 넘어갔다. (침대위에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각자 자기 수준대로 상상하라는 뜻이다.)

  • 침대 팔베개 이후 12회분(7월 1일 일요일 방영)에서 작가가 들고 나온 메뉴는, 봐 줄 만 했다. 장동건은 집에서 혼자 춤을 춘다. 너무나 흥겨워서 추는 춤, 맘보춤이다.

    춘천 출장을 준비하면서(김하늘을 데리고 간다) 면도기로 면도를 한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실내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장동건은 맘보춤을 춘다. 춤추는 장면이 무려 1분 30초. 드라마에서 이정도 길이로 춤을 추는 장면을 배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키스 이후에 남녀가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 쾌락, 엑스타시, 일치감, 경쾌함, 엔돌핀... 정서적 육체적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극작가는 배우의 육체를 빌렸다. 야하지 않게 남자 배우의 것 만. 그 육체 위에 춤을 입혔다.

    장동건, 잘 생겨서 대충 극작가가 써 준 감칠나는 대본, 인상쓰고 읽으면 될 것 같은 그런 배우는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귀여웠다.)

    만약 김은숙 작가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의식했다면 이 장면에서 어떤 장면을 넣었을까? ‘야하게 더 야하게 그러나 검열에 걸리지 않게’ 선택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벗은 뒷 면을 비춘다든가 (실제로 섹스 앤 더 시티엔 뒷 누드가 나온다.) 이런 길을 갔다면, 안되지. 국내 정상급 주말드라마가 겨우 미드 모방? K팝은 세계를 휩쓰는데 K드라마가 남의 껏 모방만 하면 어쩌려고? 

    결론은 이것이다. 어설픈 정사신 보다 훨씬 좋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