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운궁 당시 중화전과 석조전ⓒ
    ▲ 경운궁 당시 중화전과 석조전ⓒ

    덕수궁의 예전 명칭 경운궁으로의 회복을 두고 문화재청이 시민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덕수궁의 명칭을 현행대로 유지할 것인지, 경운궁으로 회복할 것인지를 시민의견 수렴을 거쳐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덕수궁(德壽宮)이라는 궁궐 명칭의 유래를 보면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난했다가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궁궐들이 소실돼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어서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私邸)였던 곳을 1593년에 임시행궁으로 사용했다.

    광해군은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하고 3년 후인 1611년에 임시행궁을 경운궁(慶運宮)으로 명명했다.

    고종은 아관파천 후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겨가게 되고 대한제국 선포 후 법궁(法宮:임금이 정사를 보며 생활하는 궁궐)으로 삼았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1907년에 고종은 순종에게 황제위를 양위한 직후 순종이 경운궁을 덕수궁(德壽宮)으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문화재청은 올 7월 국가지정문화재 중 사적 439건의 지정명칭을 변경, 고시했으나 당시 덕수궁의 명칭은 덕수궁으로 유지할 것인지, 경운궁이라는 옛 이름으로 환원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덕수궁 명칭에 대해 "100여 년 이상 사용돼 이미 사회적으로 정착된 명칭이므로 이를 바꿀 경우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커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경운궁은 "1611년부터 300여년 간 사용돼온 역사적인 명칭이며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갔다가 경운궁으로 돌아와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명실상부한 법궁이었으나, 1907년 궁궐명칭이 덕수궁으로 개칭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력에 의해 고종이 황제위를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전 황제의 거처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원 명칭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덕수궁' 명칭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오는 19일부터 26일까지 시행하고 문화재청 페이스북(www.facebook.com/chloveu) 등 여론수렴을 통한 결과를 토대로 공청회를 거쳐서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를 통해 덕수궁의 명칭변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