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운명은 외부세계와 소통"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방한
  •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의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1)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긍정적이며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 같다"면서 "젊고 개성이 강한 좋은 작가가 많은 한국문학의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24일 개막하는 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2년 만에 내한한 르 클레지오는 23일 오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있었는데 한국은 이를 잘 극복한 것 같다.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을 실감하지만 젊은이들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서울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변하고, 변하는 것처럼 안 변하는 도시"라며 "외향적으로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서울이 가진 전통적인 정신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동네 작은 식당이나 강북 동네의 분위기 등에서 이를 느낀다. 서울에 돌아오는 것은 내게 기쁨"이라며 "한국은 항상 내게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나라"라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2001년 대산문화재단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르 클레지오는 대표적인 지한파, 친한파 작가로 꼽힌다.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 머물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기도 했다.

    1회와 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도 참석한 그는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포럼에서 첫날 기조강연을 맡았다.

    그는 이번 포럼과 관련, "문학과 철학, 정치를 아우르는 중요한 주제"라며 "해결책이 아니라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학이야말로 세계화를 실천하는 분야이며 국경을 넘어 외부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분야"라며 "문학은 하나의 언어로 쓰이기 때문에 국적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문학의 진정한 운명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사진을 1초에 20장씩 투사하면 평범한 한 명의 얼굴처럼 보인다고 한다"며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다 닮았으며 모든 인간은 결국 인간일 뿐이다. 보편적인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문학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인터넷 등 덕분에 세계의 소통이 쉬워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발전에 SNS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세계가 빠른 시간에 소통하게 됐고, 의식 있는 사람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어려움을 인식할 수 있다. 만인을 분노하게 하는 독재나 반인륜적 범죄를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사회에서 정의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다. SNS 소통이 활발해지면 주먹보다 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개인적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할 때 어떤 점에 유념하는가.

    ▲한 국가에 속한 작가의 고유한 생각과 경험을 담는 문학 작품이 인류의 보편적인 영역으로 변화하는 것은 의식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진리와 진실에 더 다가가려고 노력할 때, 감정과 감동을 느낄 때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작가와 시대에 대해 잘 몰라도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문학은 암시와 간접적인 통로를 통해 길이 닿는다. 개별적인 경험에서 나오더라도 사랑, 삶의 어려운 시간, 상실감 등은 보편적인 감동이 되기 때문에 문학이 가능하다.

    -문학의 위상은 떨어지고 대중문화의 힘은 커지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지금 시대는 TV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디어의 힘이 커지면서 음향과 이미지가 인간의 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조작을 당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미디어는 보여주고자 하는 각도에서 조작된 비전을 보여줄 수 있다. 여기서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독하지만 계속 글을 쓰며 저항하는 길뿐이다.

    -세계화 속의 글쓰기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작가는 자신의 언어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국문학은 단순히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예전부터 읽은 독서와 체험이 합쳐져서 나오는 것이다. 지역적인 요소를 인공적으로 뛰어넘어 보편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진심으로 쓴 글에는 보편적인 것 속에 지역적인 것이 녹아있고, 지역적인 것 속에 보편적인 것이 녹아 있다.

    -어떤 면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긍정성을 느꼈는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면서 느끼는 것은 활발함이다. 경제 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국 젊은이들은 걱정 없이 즐겁게 지낸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국이 낙천적이라고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한국문학 때문이다. 한강이나 김애란 등 젊고 개성강한 작가들이 많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읽고 그의 비전이 정말 독창적이고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기성작가들이 전쟁의 기억을 작품으로 썼다면, 다음 세대는 전쟁의 기억 넘어서 유쾌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삶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문학은 그런 젊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문학의 미래는 밝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집은 어떤 것인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아홉 편의 단편을 모아 올가을 출간할 예정이다. 많은 부분 서울에서 쓴 것이다. 내가 본 서울의 도시 풍경과 한강을 지나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모습들을 담았다. 노인들이 전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상상해서 쓴 단편처럼 내가 상상한 부분도 많다. 사실주의적인 단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