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씨 "한국 국적 회복했지만 정부서 외면"60년대 외화 벌러 갔다 사고로 시력장애
  • (서울=연합뉴스) "일흔이 넘은 파독(派獨) 광부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고국에서 따뜻하게 생을 마칠수 있기를 바랄뿐인데 어쩌면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지…."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홍윤표(74)씨는 고국에 돌아와 받았던 냉대를 어눌해진 한국말로 천천히 풀어놨다.

    1966년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선발돼 독일에서 광부 등으로 일해온 홍씨가 이국생활을 돌아보며 작성한 수기를 들고 귀국한 것은 지난 2월.

    독일에서 장애 판정을 받은 자신과 파독광부장애인협회 회원 100여명의 처지를 고국 사람들에 알리고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홍씨의 수기는 파독광부들이 멀리 이국 땅에서 겪은 고초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홍씨는 독일에서 첫 4년간 광산근로자로 일하며 온갖 고생을 겪었다. 한국인을 담당하던 교육관은 "돼지새끼들, 일 못하는 개새끼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마구 발길질을 날리곤 했다.

    못 사는 고향땅에 성공해서 돌아와 나라를 위해 일하려고 마음먹었다던 홍씨의 수기에는 "인종차별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월급 대부분을 한국으로 송금하며 가족들과, 잘살게 될 나라를 떠올리고 뿌듯해했다"고 적혀있다.

    이후 홍씨는 독일 여성과 결혼해 아이까지 뒀지만 이혼당하고,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방사선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했다. 몸무게가 80㎏에서 반 정도로 줄어들기까지 한 투병생활 중, 시력을 잃는 등 장애를 얻었다.

    법정 투쟁 끝에 독일에서 100% 장애등급(우리나라 장애1급에 해당) 판정을 받고 보조금을 받게 됐지만, 그래도 모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홍씨가 고국에서 느낀 것은 싸늘한 무관심이었다.

    홍씨는 200장이 넘는 명함이 담긴 수첩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며 "국회의원 20여명에 법무부 장관까지 만나 '돕겠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변하는 것이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씨가 바라는 것은 정부가 나라 발전에 기여한 파독광부들의 공로를 인정해주고 생활이 어려운 이에게 연금을 지원하거나 한국 재정착을 돕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독일 국적을 취득한 상태지만 지난해 이중국적이 허용되면서 보건복지부가 "한국 국적을 회복하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독일에서 받은 장애판정문을 가져오면 인정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지만, 정작 홍씨가 국적을 회복하자 까다로운 인정조건을 내밀며 '없던 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예전처럼 어렵게 살면 말을 안합니다. 이제 살 만해지니 정부가 파독광부들을 잊은 것 같습니다. 나는 서류만 독일인일뿐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민등록증까지 받은 지금 제가 쉴 곳이 어디인지…"

    자신과 파독광부 동료의 이야기를 담은 수기를 펴내려고 하지만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홍씨는 "파독광부들은 지하 2천미터 갱도에서 고생하면서도 스스로를 산업역군으로 생각하고 자랑스레 여겼는데 빛이 바랬다. 우리도 월남 참전용사처럼 고생한 만큼의 대우를 받길 바랄뿐이다"라며 애써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