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④ 

     내가 조지 워싱턴대를 졸업한 것은 1907년 6월 7일이다. 당시의 학장인 알렌 윌버(W. Allen Wilber)로부터 학위를 받았는데 대학을 2년 4개월만에 졸업한 셈이었다. 파란만장한 대학 생활이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배재학당에서 2년간 서양 학문을 받은 것 뿐이어서 기초가 부족했다. 거기에다 바깥 활동과 생활비 벌어 사는 일에 시간을 빼앗겨서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곧 1907년 가을 학기부터 하버드 대학원의 정치학 과정에 등록을 했다. 당시의 하버드대 총장 엘리엇(Charles W. Eliot)이 나를 받아 준 것이다.

    내가 하버드 소재지인 보스턴 근처의 케임브리지로 옮기기 전, 그러니까 6월 중순 쯤 되었을 때였다.
    한국공사관이 일본공사관에 흡수되기 전에 독립운동을 하겠다면서 떠났던 김일국이 나를 찾아왔다.
    1년 반만이다.

    「선생님, 태산이 죽었다면서요?」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김일국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이 사람아, 그동안 어디 있었는가?」
    그동안 김일국이 체포되어 소환되었다는 소문도 들었던 처라 내가 두 손을 잡고 되려 물었다. 김일국은 아카마스의 습격에도 연루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이 없는 곳으로만 숨어 다녔지요.」
    김일국이 눈에 고인 눈물을 떨구면서 말했다.
    조선인 중에 일본 정보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1902년에 공식적으로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었다가 1905년에 이민이 금지 되었지만 공식 이민자는 7500 가깝게 된다. 거기에다 유학생과 불법 이민자를 포함하면 8천이 넘는 조선인이 미국 땅에 깔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태산이 어떻게...」
    하고 김일국이 다시 물었으므로 나는 외면했다. 언제나 가슴에 묻고 있었지만 위로 받는 것이 싫었다. 나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애비다.

    「병으로 죽었네. 그보다 자네 이야기나 듣세.」
    내가 겨우 말했더니 김일국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우리는 스미스씨 별채 응접실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다. 이제는 기숙사에서 나와 이곳에서 묵는 중이다.

    김일국이 입을 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다가 독립운동을 하는 문양목씨를 만났습니다. 문양목씨가 제가 선생님을 잘 안다고 했더니 선생님게 이걸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김일국이 가슴 주머니에서 헝겊에 싼 편지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편지를 편 나는 숨을 삼켰다.
    혈서다. 혈서를 여러 장을 썼다. 긴장한 내가 혈서를 읽는 동안 김일국은 숨소리도 죽이고 있다.

    혈서 내용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올해 1월에 결성된 독립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회장을 맡아달라는 청원서였다. 청원서 끝에는 문양목과 백일규 등 5인의 서명이 적혀져 있다.

    머리를 든 나에게 김일국이 말했다.
    「대동보국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의 관서지방 파벌에 반대하고 독립한 단체인데 그 세력이 공립협회보다 낫습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대동보국회가 독립하여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립협회는 안창호가 창립한 단체였다.

    내가 긴 숨을 뱉고 말했다.
    「난 가을 학기에 하버드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공부할 작정이네. 내가 문양목씨께 답장을 보내 드리겠네.」
    「그러십니까?」
    했지만 김일국은 아쉬운 표정이다.

    김일국이 말을 잇는다.
    「선생님의 명성은 이미 동부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제 나서실 때가 된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