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방형 병원 도입 "준비 잘하면 성공한다" 

    두려움과 기대감. 이 상반된 감정으로 인해 인생의 크고 작은 기회나 사건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막상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자신에게 닥칠 손해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여 기회를 놓쳐버리는 수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기대감에만 치우쳐서, 준비 없이 무리하게 달려들었다가 실패를 맛 볼 수 있다. 전자의 사람은 겁쟁이로 무시당하고, 후자의 사람은 멍청이로 놀림 받는다. 그런데 만약 이 양쪽의 사람들이 한 가지 일을 두고 논쟁을 벌이게 되면 어떨까? 둘은 결론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현재 우리 나라의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투자 개방형 병원(혹은 영리 병원)의 도입 문제이다. 이를 두고 양쪽이 대립되어서 그 의논 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한쪽은 투자 개방형 병원의 도입이,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의료 보험의 민영화까지 이뤄져, 저소득층은 의료 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중산층도 의료 부담이 증가하여 힘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은 민영화 괴담으로까지 이어지며 이런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리게 만들고 있다. 한편 반대 쪽은 투자 개방형 병원의 도입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쟁을 통해서 의료서비스의 질이 개선될 것이며, 의료 경쟁력이 생겨 세계 의료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고, 고용 창출 효과도 뛰어나며 효율성이 증대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 경제 자유 구역 내에 연습 병원을 세우려다가 제주도 지사의 반발로 그 계획이 무산 되었다. 또한 8월 8일 내각에서 내정된 진수희 보건복지부 내정자 역시 영리 병원을 도입하지 않는 기존의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밝히면서 의료 서비스 육성을 전략 산업으로 기획하는 기획재정부와 충돌하는 기존의 상황이 유지되었다. 양측 모두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과 상업성을 각각 고려하여, 우리 나라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한 의견들이지만, 이런 의견의 충돌이 오래되면서 NATO 상태에 빠져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있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21일 부산에서 열린 제47차 월례토론회에서도 “서비스산업 선진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제목 하에 영리 병원의 도입과 한국의 의료산업의 전망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기효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장은 이 자리에서 영리 병원의 단점에 대한 두려움은, 과장되거나 비약의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투자 개방형 병원들도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보장 시스템 내에 들어있는 병원이기 때문에 진료 거부 같은 것은 하기 어렵고, 영리병원의 도입과 상관없이 이미 특정 의료 서비스로의 편중 현상이 진행 중인데 영리 병원의 도입이 그걸 가중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건강 보험 당연지정제의 폐지 등의 결과까지 생각하는 것은 몇 단계 논리의 비약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리 병원이 경제적 효과를 얼마나 가져올 것이냐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다. 미국 의학분야 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Woolhandler와 himmelstein의 논문에 따르면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비가 1608달러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수익을 포함한 기타 비용으로 인해 효율성이 결여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다른 산업이 매출의 10% 정도가 인건비인 반면에 의료 산업은 매출의 45%가 인건비이다. 이는 두 가지 문제점을 초래하는데 인건비 절감이 수익성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고용 불안정성이 증가할 수 있고, 동남아 지역에 비해 인건비가 턱없이 비싸기 때문에 동아시아 의료 허브로서의 우리 병원의 경쟁력도 뒤쳐지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영리 병원의 도입에 대해 두려워 하는 쪽도 너무 지나치고, 기대하는 쪽은 너무 꿈에 부풀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두 입장이 충돌하니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는 단순히 영리 병원의 도입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영리 병원의 도입은 한국의 의료 산업 전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 안에서 이뤄지는 부수적인 일이어야 한다. 특정 의료 분야로의 편중 현상, 그리고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무르는 공공의료 부문, 아직 구축되지 않은 의료 인프라 등이 문제점이다. 영리 병원의 도입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의료 서비스 산업 전반의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 고쳐나가는 논의가 더 시급하다.

     영리 병원을 도입한다고 해도 우선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철저한 준비는 두려움과 기대감의 해법이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고 실행하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 준비를 하고 뛰어든 일에는 예상했던 기대치를 얻어낼 수 있다. 지금은 준비도 없이 논쟁에만 뛰어들어 일을 그르치고 있다. 우리는 겁쟁이도 멍청이도 아니다. 의료 산업에 대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 <박재현 /한국선진화포럼 NGL/ 서울대 재료공학부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