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⑪  

     「태산아.」
    소리쳐 부르며 내가 다가갔지만 태산은 박용만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것이 마악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내가 태산의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놈아, 애비를 잊었느냐?」

    그러자 박용만이 태산에게 잡힌 손을 풀면서 말했다.
    「아버님한테 인사 드려야지.」

    「아버님.」
    그때서야 태산이 입을 달삭이며 나를 부르고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햇볕에 탄 얼굴, 몸은 여위었고 어디서 얻어 입혔는지 양복은 커서 소매와 바지 끝을 접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내가 태산을 부등켜안았다.

    「이놈아, 그 먼길을 어떻게 왔느냐? 잘왔다.」
    마침내 내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그렇다. 일점혈육(一点血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단 하나의 자식. 태산이 지금 내 품 안에 안겨있는 것이다. 내가 6대 독자로 태어났으니 태산은 7대 독자가 되겠다.

    나는 태산을 안은 채 역을 나왔다. 역에 함께 온 김일국과 박용만이 인사를 나누었고 일행 넷은 마차에 올랐다.

    「형님, 태산이를 로스엔젤리스까지 데리고 온 사람은 로이드란 이름의 선교사였습니다.」
    내 시선을 받은 박용만이 말을 이었다.
    「벙커 목사의 부탁을 받고 태산이를 데리고 왔다는군요.」
    「아아, 벙커 선생.」
    나는 신음하듯 말을 뱉았다. 그리움과 고마움이 솟구쳐 다시 목이 메었다.

    벙커(Dalzell A.Bunker)는 미감리교 소속으로 배재학당 3대 당장을 지냈으며 내가 감옥서에 있을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아직도 안고있는 태산의 머리를 쓸면서 물었다.
    「그런데 왜 이 아이만 혼자 보낸단 말인가? 집안에 무슨 일은 진정 없는가?」
    「없습니다.」

    머리까지 저었던 박용만이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로이드씨한테 대충 들었습니다만 형수께서 먼저 태산이를 보내고 뒤따라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럼 아버님은?」
    「그 말씀은 듣지 못했습니다.」

    박용만한테서 시선을 뗀 내가 무릎에 앉힌 태산을 보았다.
    태산은 마차 밖의 거리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사람은 노력만 하면 굶지는 않고 산다. 조선 땅에서 양식을 구하지 못해 초근목피로 연명한 적도 있었던 나였다. 이곳에서 그릇을 닦아 아버지까지 세 식구를 부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가? 태산부터 보내고 뒤를 따라 온다니? 그때 나는 태산의 몸이 무거워 진 것을 느끼고는 내려다보았다. 태산은 금방 잠이 들었다. 아버지를 만나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내 시선을 따라 태산을 보던 박용만이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형님, 태산이가 제물포를 떠나 45일 만에 형님 품에 안겼습니다.」
    「자네가 이곳까지 데려와줘서 고맙네. 이 신세를 어찌 갚아야 되겠나?」

    그때서야 내가 두서없는 인사를 했더니 박용만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형님이 혼자 애쓰시는데 제가 이런 일이나 도와드려야지요. 그리고 또 형님이 뵙고 싶었습니다.」     

    박용만이 손을 뻗어 자고있는 태산의 머리를 쓸었다.
    「태산이가 무척 아버지를 찾았다고 합니다. 로이드씨한테 아버지를 뵈려면 며칠 남았냐고 매일 물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