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얄타 회담 때 루스벨트 수행원이 소련 간첩!  
      
      세계금융질서를 주도한 IMF를 창립할 때 미국 대표로서 핵심적 역할을 하였던 당시 미국 재부부의 해외담당 책임자 화이트가 소련 정보기관에 포섭된 간첩이었듯이 유엔의 창립 때 사무총장이었던 국무부의 차관보급 高官 앨저 히스도 소련을 위해 복무한 간첩이었다.
     
      히스도 화이트처럼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되어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 서기, 법무부 직원으로 일하다가 1936년에 국무부에 들어갔다. 1939년,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고 轉向한 뒤 기자로 일하고 있던 휘테커 참버스는 국무부의 아돌프 벌 차관보에게 히스가 공산당원임을 알려주었다. 프랑스 정보기관도 "미국 국무부의 한 차관보가 소련 스파이다"는 정보를 미국측에 제공하였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좌익성향의 인물들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런 정보에 무관심하였다. 이 틈을 타고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정부의 要職으로 진출하였다.
     
      히스는 국무부에서 가장 촉망 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1945년 초 루스벨트 대통령을 수행하여 얄타 회담에도 참여하였다. 이 회담에서 스탈린은 루스벨트의 戰略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히스를 비롯하여 루스벨트 정부 안에 심어놓은 소련 간첩들이 제공한 정보 덕분이었다고 한다.
     
      히스는 얄타 회담이 끝난 뒤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는데 이때 소련 공산당의 외무부장 안드레이 비신스키는 히스를 만나 그동안의 협조에 감사하였다. 이 정보를 미국의 NSA(국가보안청)가 암호해독으로 파악하고 있다가 冷戰이 끝난 뒤 공개하였다. NSA의 해독문서엔 '아레스'라는 암호몀으로 나오는데, 얄타 회담 직후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국 高官은 히스뿐이었으므로 아레스는 히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히스는 1947년 미국 국무부를 떠나 카네기 財團의 대표를 맡았다. 1948년 당시 타임 잡지사의 편집위원이던 휘테커 참버스는 美 하원의 非미국활동 조사 위원회에 출석하여 히스가 1930년대 공산당원이었으며 자신에게 美 국무부 문서를 건네주었고 자신은 이 문서를 소련에 전달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히스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참버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提訴하였다. 참버스는 이에 대응하여 히스가 써준 메모와 타이핑한 문서를 공개하였다. 히스는 의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기소되어 實刑을 살고 나온 뒤에도 무고하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도 히스를 편들고 히스를 몰아세웠던 닉슨을 비방하였다.
     
      1996년 미국 NSA는 소련측의 암호를 해독한 문서를 공개하여 히스가 소련 간첩이었다는 物證을 제시하였다. 이밖에도 소련측에서 나온 많은 문서와 소련 정보기관 출신들의 증언 등으로 히스가 간첩이었다는 주장은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정되었다.
     
      히스와 같은 知性人도 공산주의에 물들면 염치불구하고 거짓말을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공산주의에 오염된 경력이 있는 인물들에 대하여는 신뢰성을 무조건 의심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한국 정부 안엔 히스 같은 간첩이 없을까? 없다면 하나의 기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