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이 기대치를 높인 거 아닙니까?" "이명박 정권 심판 아닌데 (언론에서) 왜 제목들을 이렇게 뽑지?"

    3일 새벽 개표결과를 지켜보던 일부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발언이다.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에서 저녁 6시 지상파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사라진 정몽준 대표와 당 지도부는 다시 이곳을 찾지 않았다.

  • ▲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지도부. ⓒ연합뉴스
    ▲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지도부. ⓒ연합뉴스

    압승할 것으로 봤던 서울시장 마저 한참을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끌려가자 여당은 아연실색했다. 출구조사 뒤 첫 반응은 "믿기 어렵다"였다. "어떻게 (여론조사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지"란 반응이 다수였다. 이런 분위기는 개표 초반까지 이어졌다. 선거 전 많게는 20%P까지 앞서던 서울시장 선거가 막상 뚜껑을 열자 격차가 0.2%P였지만 당직자들 입에선 "서울은 1000표차라도 이깁니다"라고 자신했다. 이때까지도 한나라당은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믿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와 크게 다른 케이블 방송 YTN과 MBN의 조사결과를 가리키며 "YTN이랑 한국갤럽도 출구조사를 했어" "YTN, MBN은 달라", "출구조사는 말 그대로 출구조사일 뿐이야. 투표는 까봐야 알아" 등의 발언을 했다.

    개표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수도권 3곳 중 경기도지사를 제외한 서울과 인천 선거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까지 야당이 다수를 휩쓸자 이들의 "믿을 수 없다"는 첫 반응은 점차 "믿기 싫다"로 바뀌었다. 이 때 부터 등장한 패인은 "우리 지지자들이 투표하러 안갔다"는 것이었다. 선거 전 판세가 한나라당의 우세로 나오자 지지자들이 이길 줄 알고 투표하러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당의 일부 인사들의 실언도 원인으로 꼽았지만 개표 중반 패색이 짙자 여당은 가장 중요한 패인을 지지층의 기권에 떠넘겼다.

    패인을 묻자 고위 당직자는 대뜸 "민주당이 잘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이번 선거는 과거 선거와 비교해서 보고 분석해야 합니다. 지방선거는 원래 여당의 무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 압승할거라 얘기한 적 있습니까. 언론에서 기대치를 높여놓은 거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과거 민주당이 여당 시절 치른 선거와 비교할 경우 이번 선거를 한나라당의 패배로만 볼 수 없고, 선거의 기대치 역시 언론이 높여놨다는 것이다. 다른 당직자도 "심판이란 단어는 잘못"이라고 강변했다.   

    개표가 종반으로 접어들고 끌려가던 오세훈 후보가 새벽 4시 15분께 한 후보를 뒤집자 그제야 이들은 다시 TV앞에 모였다. 개표결과가 처음 방송3사의 출구조사와 거의 들어맞자 '기막히다'는 듯 "출구조사 정확하네", "민심이 무섭긴 무섭네" 등의 반응을 보였고, 가까스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그제야 이들 입에서 "자만했었다"는 말이 나왔다.

    개표 종료 뒤 바로 열린 마지막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정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고, 나머지 지도부도 뒤따라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부는 하반기 국회직을 위해서 혹은 차기 당권 도전을 위해 이미 사퇴를 결심한 상태였다. 선거 뒤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이들의 말과 행동에 바로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