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토야마 총리 사임과 한일관계

    최영호 (영산대학교) www.freechal.com/choiygho 

       어제 6월 2일 한국에서 지방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일본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사임할 뜻을 밝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토야마는 이날 오전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총리직 사퇴 의향을 밝혔으며 이날 저녁에는 차기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여 정계에서 물러날 것을 미리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중국,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생각하면 임기 도중에 그만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국민과 한 몸을 이루는 새로운 정치를 위하여, 자신이 물러서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일주일 이전부터 사퇴 여부를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작년 민주당이 선거공약으로 오키나와 밖으로 옮기겠다고 했던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이 결과적으로 오키나와에 머물게 되고, 이에 따라 사민당이 연립여당에서 이탈하게 된 것이 사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 유사시 등에 대비하기 위해 오키나와 섬 안에 활주로를 갖고자 하는 미국과, 어느 곳에도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일본 지방정부를 모두 설득하지 못했다. 민주당 정부는 이미 2006년 자민당 시절에 미국과 합의된 대로 오키나와 헤노코(?野古)로 옮기기로 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지난 5월 28일 밤 각료회의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당일 기자회견을 통해 하토야마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한 것 이상으로 오키나와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사과를 표명했으나, 민주당 내외에서 수상의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실망이 확산되면서 결국 그는 사퇴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토야마 총리에게 일련의 정치자금 스캔들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10억 엔의 정치자금을 받고 이것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허위 기재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권 초기부터 여론의 반발을 샀다.
    더욱이 민주당 간사장 오자와이치로(小澤一郞)가 토지구입을 위해 빌린 4억 엔 가량의 자금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는 등 정치자금 문제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민주당 정권 지지율은 계속 하락해 갔다. 이러한 추세로는 다가오는 7월 11일에 이루어질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민심을 되돌리려는 방편으로 총리와 간사장이 뒤늦게 동반 사퇴를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총리 취임 8개월 만에 자리를 내놓은 하토야마는 지난해까지 해마다 수장을 바꿔가며 민심 돌리기에 급급했다고 비판 받던 자민당 말기 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하토야마 총리는 재임 기간 중에 한국에 대해 각별한 우애(友愛)를 표시해 왔다.
    취임 직후인 작년 10월 초, 한일중 3국 정상회담에 앞서 먼저 서울에 들렀다가 베이징으로 향했으며, 며칠 전 5월 29일 3국 정상회담에 앞서서도 먼저 대전의 현충원을 방문하고 천안함 순직 장병들을 참배했다. 그날 제주도에서 3국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그는 천안함 순직 장병에 대한 묵념을 긴급 제안했으며, 대북제재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다.
    다만 그 이튿날 그는 대북 제재에 관한 단호한 자세를 보이는 과정에서, 만일 일본이 천안함 사태와 비슷한 일을 당했더라면 자위권 발동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신중하지 못한 모습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한편 그는 과거사 문제에 관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비교적 원만한 한일관계를 유지하는데 노력했다. 그는 야당의원 시절부터 일본의 전쟁범죄 조사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죄 및 보상 등과 관련된 법안들을 여러 차례 제출했고, 총리 취임 이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자민당 정부와는 달리 과거사 청산에 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해 왔다.
    민주당 정부는 출범 직후 한국인 강제동원 노무자 피해 자료로서 한국 정부가 요청한 후생연금기록의 확인 작업에 적극 협조했으며, 올해 3월에는 17만명 분의 노무자 공탁자료 사본을 한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 5월 유텐지(祐天寺) 유골봉환 추도식에 처음으로 오카다가쓰야(岡田克也) 외무대신이 참석했고, 이번 제주도 3국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총리가 "지난 100년의 과거사를 확실히 청산하기 위해 반성할 일은 반성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적 현실이라는 높은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재일외국인에 대한 지방선거 참정권 부여법안을 추진했으나 당 내외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추진력을 잃었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하토야마 총리는 오카다 외무대신과 함께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보수 성향 정치가들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4월 7일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이러한 그의 우유부단한 자세는 결국 한국 국민으로부터도 반발을 사게 되었다. 

       하토야마 퇴진 이후 당장 한일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간 나오토(菅直人) 부총리,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 대신 등, 하토야마의 뒤를 이을 민주당 대표 주자들이 대체로 한국에 대해 전략적으로 우호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의 퇴진으로 민주당이 민심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가, 즉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에는 한국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오는 8월에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총리의 전향적인 과거사 관련 담화나 전후보상 관련 법안 처리 등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에는 자민당에 비해 분명히 과거사 문제에 관하여 전향적인 분위기가 우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사 직시’ 문제를 강력하게 밀고 나갈 지도력을 가진 인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