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Lucy 이야기 ①

     1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는 밤 12시가 되어있었다.
    「나」는 바로 싱맨(Syngman)이며 코리아가 19세기 말에는 초선(Chosun)이란 왕국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창가로 다가가 섰다.
    깊은 밤이었는데도 광장의 촛불 군중은 더 많아졌다.
    대통령의 추모 군중이다.
    한동안 광장을 내려다보던 나는 탁자로 돌아와 핸드폰을 들었다.

    LA는 오전 7시, 테드는 일어났을 것이다.

    테드 김의 본명은 김태수,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소개 받았는데 첫눈에 서로 끌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6피트가 훨씬 넘는 장신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부드러우면서 굵은 목소리와 유려한 화술,
    거기에다 예일대 박사 학위를 따놓았으니 상품 가치는 최상급이다.

    나는 어머니가 한국계였지만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
    집안에서도 영어만 썼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 세 번 만에 테드가 전화를 받는다.

    「루시, 잠 안자고 뭐하는거야?」
    대뜸 그렇게 물은 것은 한국 시간을 염두에 두었다는 증거였다.

    내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고 가슴이 따뜻해진 느낌이 온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국적이 무슨 소용인가?
    난 그가 노스 코리아 출신이었다고 해도 사랑했을 것이다.

    「테드, 오늘 저녁엔 오는거지?」
    내가 묻자 테드가 짧게 웃는다.

    「그래, 하지만 좀 바빠서 같이 다닐 수는 없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조금 자존심이 상한 내가 말을 받는다.
    「나도 촛불 구경하러 온건 아니거든?」
    「어때? 거기 분위기가?」
    테드가 화제를 돌렸으므로 핸드폰을 귀에 붙인 내가 다시 창가로 다가가 섰다.

    시청 앞 광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이제 찬란한 별세계가 되어있다.
    거대한 축제장 같지만 엄숙하다.
    이런 장관을 본 적이 없다.

    「아름다워.」
    광장을 내려다보면서 내가 말을 이었다.

    「죽은 대통령은 누군지 모르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위대한 분이지.」
    테드의 목소리가 굳어져 있었으므로 나는 핸드폰을 고쳐 쥐었다.

    「테드, 나한테 어떤 사람의 자서전이 배달되어 왔는데, 싱맨 리라는 사람이야.」
    「누구?」
    「싱맨 리, 1961년 7월에 프란체스카란 사람에게 부탁해서 적은 자서전이야.」
    그리고는 내가 싱맨 리의 스펠링을 불러주고 나서 덧붙였다.

    「재미있어, 그 사람이 배재학당이란 데를 졸업하고 계몽운동을 하는 장면이.」

    「잠깐, 그 자서전이 어떻게 전해졌다구?」
    하고 테드가 물었으므로 나는 택배 회사를 불러주고 내용을 다시 설명했다.

    그러자 테드가 말했다.
    「내가 봐야 알겠지만 싱맨 리는 한국명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야.」

    「어머, 그 사람도 대통령이야?」
    놀란 내가 되물었을 때 테드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북 분단의 원흉, 미제의 앞잡이, 독재자였지.」
    테드의 목소리는 차갑게 이어졌다.

    「우리 대통령의 장례식 때 그 인간의 자서전이 너한테 배달되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군.」
    「테드, 빨리 와.」

    왠지 찜찜해진 내가 말하자 테드가 서두르듯 말했다.
    「알았어. 바로 떠날테니까.」

    그 때 문득 테드가 나에게 한국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장례식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