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현해탄' 하면 일본이 웃는다

    MBC가 3.1절 특집드라마로 방영한다는 ‘현해탄의 결혼전쟁’에 대해 말이 많다.
    하필이면 3.1절 기념일에 맞춰 왜 한일남녀 애정드라마를 방영하느냐는 반발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일본여성의 ‘독도 망언’이 불을 지른 탓이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 고정출연중인 ‘아키바 리에’라는 여성은 지난 월요일 “독도는 한국이 먼저 발견했지만 이름은 일본이 지었다”고 발언해서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국의 양대 지상파 방송이 한명의 일본여성한테 수난을 겪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독도’문제는 ‘동해’와 더불어 민감한 국가적 이슈인 줄을 이 여성이 모를 리 없으련만, 그녀의 무신경은 그렇다 치고 드라마 제목 ‘현해탄’이란 말은 이렇게 자꾸 써도 좋은 것일까.

    부산과 일본열도 사이의 해협은 대한해협이다. 일본쪽에선 쓰시마(對島=對馬)해협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해협을 대한해협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자주 현해탄이라고 부르는 게 문제다.
    일본에서  '현해(玄海)'라고 부르는 바다는 대마도에서 큐슈 북쪽에 이르는 해역인데, 그려 보면 큐슈 북해안의 후쿠오까(福岡)에서 가라츠(唐津)를 잇는 일대로부터 이끼(壹岐)섬과 대마도까지를 아우르는 연안 바다가 된다.
    일본 DB를 검색해보면 “공식명칭은 ‘현계탄(玄界灘)‘이고 약칭으로 ’현해(玄海)‘라고 부르며 현해탄(玄海灘)은 오기(誤記)”라고 적혀있다. 다만 식당이나 술집, 여관 또는 단체 이름에는 ‘현해탄’ ‘현해’ ‘현계’를 두루 쓰고 있으며, 일본어 읽기로 현계탄과 현해탄은 ‘겐카이나다’로 발음이 같기 때문에 界와 海를 혼용해 왔다고 한다.

    '玄'은 북쪽을 지칭하는 北玄武의 玄

    현해탄이란 호칭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시비 할 마음은 없다.
    한국인들이 현해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망발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한다.
    일본이 ‘현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 바다가 큐슈의 ‘북쪽경계’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4방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左靑龍 右白虎 南朱雀 北玄武)에서 북현무의 현,  즉 큐슈의 북쪽 바다이므로 ‘玄界灘’이란 이름을 붙인 것 뿐이다.
    흔히 현해탄의 현(玄)이 ‘검을 현’이니까 ‘검은 바다’라고 해석하고, 해협을 흐르는 해류를 일본이 ‘흑조(黑潮)’라고 부르는 것까지 끌어다 붙이기도 하지만, 그 검은 조류와 현계탄은 직접관련이 없다.
    굳이 일본식으로 부르고 싶다면, 한국에서는 남쪽경계이므로 남주작의 주 ‘주계탄(朱界灘)’이라야 옳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 방송에선 언제부터 ‘대한해협’을 ‘현해탄’으로 불렀을까.
    일제시대를 빼면 가까운 예로 1961년 KBS라디오 연속극 ‘현해탄은 알고 있다’가 떠오른다.
    지난해 타계한 원로작가 한운사(韓雲史)의 드라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11권의 책으로 나왔고 영화로 만들어져 또 한번 대박을 터뜨렸다. 김기영(金綺泳) 감독은 이때 처음 셋집 신세를 면했다고 전해지는 이 영화 역시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벌어진 한일 남녀간의 ‘영원한 사랑’ 테마였다. 그 후 현해탄은 역사와 사랑과 낭만이 서린 국제문화코드처럼 자주 무대에 등장하였고, 한-일관계의 문제라면 대뜸 '현해탄'이란 접두어가 나타나곤 했다. 지금도 KBS 월드 라디오에서 ‘현해탄의 무지개’라는 일본어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민족 대이동의 바다...침략의 바다

    2만년 전만 해도 붙어있던 땅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갈라진 것은 최후의 빙하기 끝 무렵 약1만년 전이라고 한다. 이때 생겨난 한(恨) 깊은 바다의 운명, 단군이래 얼마나 많은 우리 민족이 이 해협을 왕래했던가.
    삼국시대 고대사(古代史)에 나타나는 기록만도 양국 사서에 부지기수다. 삼국 전후부터 가야를 비롯한 각국의 왕족 귀족 백성들이 열도에 건너가 여기저기 식민지를 개척한 일, 4세기말 고구려에 쫓긴 ‘비류백제’가 나라(奈良)에 터전을 잡은 일, 5세기 개로왕의 동생이 형수와 왜로 건너가다가 태풍을 만나 무령왕(武寧王=섬왕)을 낳은 섬도 이 바다에 있다. 지금 이 섬에 가면 ‘백제무령왕생탄지지(百濟武寧王生誕之地)’라고 새긴 하얀 비석이 한국 관광객들을 부른다.
    민족이동의 피크는 백제 멸망후 왕조 신민전체가 왜의 백제식구와 합류하여 왕국을 다지고 '일본(日本)' 국호를 제정한 것이며, 칭기스칸 전성시대 왜국 원정길을 떠난 몽고-고려 연합함대가 태풍을 만나 거센 흑조의 소용돌이(灘)에 먹힌 것도 이 바다 어디쯤인가. 그 태풍은 카미가제(神風)란 신명으로 2차대전때 육탄 전투기의 청춘들을 산화시키는 악마의 신풍이 되었다.
    지척의 가라츠 나고야성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진을 치고 전국의 배를 끌어모아 부산으로 치고 들어온 임진왜란의 출병지라서 더욱 특별한 침략의 바다 현계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 도고(東鄕平八郞) 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침몰시킨 대해전의 격전장도 바로 이곳, 한국을 먹는데 마지막 방해물을 제거한 승리와 함께 정한(征韓) 시나리오는 일사천리였다.

    한일병탄의 낭인패 간판 '玄洋社'

    현계탄의 다른 이름이 또 있다. 북쪽 바다 현계양(玄界洋), 줄여서 현양(玄洋)이다.
    한일병탄의 첨병이던 낭인패의 정치집단 ‘현양사(玄洋社: 겐요샤)' 간판에 박힌 이름이다.
    1881년 후쿠오카 출신 하급무사들이 ‘정한론’의 꿈을 펼치려 만든 구국결사대는 동학운동에 개입하여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에 의지하려는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진회를 만들어 한국 병탄 조약에 도장을 찍은 후, 동경 야스쿠니 신사에 달려가 '대한제국'을 바치고 만세를 불렀던 현양사.
    그런 줄도 잊은 채 우리가 곧잘 불러대는 “현해탄”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던가.
    일제 식민의 강제징용에 무수한 한국인들이 끌려간 통곡의 바다, 광복과 더불어 배마다 가득가득 귀국선에 맨몸 싣고 달려 온 “만세”의 바다, 그 검은 물결위에 3월1일부터 이틀간 MBC가 한일남녀의 사랑놀이 배를 띄운다고 한다.

    광복65년, 사랑도 좋고 화해도 좋고 미래의 동반자란 말도 어느 새 식상해버린 세월이다.
    글로벌시대의 역사적 환경이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만의 3.1절은 3.1절이어야 한다.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심장에 칼 찔린 그날에, 조상님 제사상 앞에서 꼭 일본여자와 국제결혼식을 올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 100년전 국가를 일본에게 팔고 싶어 황제를 끌어낸 무리와, 100년후 국가정신을 정면에서 일본정부용 오락물로 뒤덮어 버리는 무리, 그들의 영혼 사이에 100년의 시차는 달리 없어 보인다.

    현해탄은 없다...쓰면 쓸수록 망발

    ‘현해탄’은 없다. 그런 이름의 바다는 일본에도 없고 대한해협에도 없다.
    뜻도 모른채 겉멋 부리는 수식어로 써먹는 무의식, 36년간 덩달아 쓰던 버릇이 남긴 식민잔재일 뿐이다. 침략의 바다 현해탄을 좋아하는 피침략국, ‘동해’는 ‘일본해’가 아니라는 우리 입에서 툭하면 튀어나오는 일본어 ‘현해탄’은 대한해협까지 스스로 부정하는 한국인만의 고유명사인가.
    MBC는 드라마 제목도 바꾸고 방영시기도 바꾸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