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문제에 관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의 최근 발언은 지극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박 전 대표는 지난 23일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그녀 특유의 선문답(禪問答) 식 발언으로 ‘세종시’의 원안 관철을 주장했다. 그녀는 ‘세종시’ 건설의 원안 고수 여부는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라고 못 박았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9부2처2청이 이전하는) 원안을 지키고, 원안에다 필요하다면 플러스 알파(+Α)가 돼야 한다"면서 "백지화는 말이 안 된다"고 한 술 더 뜬 것으로 보도되었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두 가지 이유로 부적절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첫 번째 이유는 그녀의 이날 발언은 ‘신뢰’를 구실로 삼아 과거 그가 이끌던 ‘한나라당’이 저지른 잘못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지금의 시점에서 충청도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하는 것은 국가적인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여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을 도외시했다는 것이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은,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그녀가 해야 할 말의 정답(正答)이 있었다. 그녀는 이 문제에 관한 그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했었다.  

    “정치적 신뢰의 차원에서는 ‘세종시’ 건설은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이 옳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의 차원에서는 ‘세종시’ 건설을 원안대로 추진할 경우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백년대계의 차원에서 과연 정당한 선택이 될 것이냐를 놓고 많은 국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신중하게 내리는 것이 옳다. 정부는 이 문제를 가지고 국민투표의 방법으로 전체 국민의 의견을 물어서 그 결과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정부가 원안을 수정하여 ‘세종시’ 건설을 추진할 경우에는 정부와 정치권은 이로 인하여 해당 지역 주민들이 입게 될 정치적•경제적•문화적•심리적 피해와 손실을 정부가 보상해 주는 조치를 성실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사실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이끌던 ‘열린우리당’ 정권이 2005년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그리고 2007년에는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특별법’의 입법을 추진했을 때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박 전 대표가 이끌던 ‘한나라당’이 이에 찬동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데는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할 것이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심지어 충청권 안에서도 한정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큰 쟁점으로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어서 이번에 충북 증평•진천•음성•괴산 지역에서 실시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이 문제는 중심 선거이슈로 부각되지도 못 하고 있을 정도로 국민적 관심으로부터 유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가 적어도 차기 대권(大權)을 노리는 선두주자(先頭走者)로서의 자신의 입지(立地)를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그녀는 당연히 “과거의 과오(過誤)는 과감하게 시정하는 결단(決斷)의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23일의 발언을 통하여 박 전 대표는 자신이 과거에 한 일은 잘 되었던지, 잘못 되었던지 무조건 이를 옹호하고 고수하겠다는 독선적(獨善的) 아집(我執)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세종시’ 문제에 관하여 박근혜 전 대표가 보여준 태도는 대권주자로서의 그의 그릇 크기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대권을 지향하는 박 전 대표의 앞길이 순탄스러워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