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 2명의 석방 교섭을 위한 특사 후보로 거론돼온 인물 가운데 최고 중량급에 해당한다.

    그동안 앨 고어 전 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여기자 석방을 위한 대북특사 후보 물망에 올랐으며 흑인인권지도자인 제시 잭슨 목사도 방북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들 후보는 전직 미 대통령이자 현 미국 외교정책의 수장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의 중량감에는 비길 바가 못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의 특사로 파견된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파견을 적극 밀어붙인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북미간 물밑 대화에서 미국에 최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희망한 북한의 요구에 미국이 수동적으로 응한 것인지도 분명치 않지만 전자쪽에 가깝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클린턴 자신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를 도출했고 임기말인 2000년 10월에는 북미관계에 한 획을 그은 북미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는 본인 스스로가 대통령 재임중 방북을 적극 모색할 정도로 북한 문제에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거물급 인사를 북한에 파견한 것은 그동안 북한의 도발에 대해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여기자 석방 문제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나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하려는 의중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미국이 종래의 입장대로 여기자 석방과 북핵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간주, 여기자 석방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리처드슨 주지사나 잭슨 목사 등과 같이 과거 인질 석방교섭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던 인물들을 보내는게 이치에 맞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을 파견한 것은 대북 정책기조의 커다란 변화예고로 볼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6자회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북미 양자대화를 요구해온 북한측의 요구에 사실상 응하는 셈이 된다.

    외형적으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여기자 석방 교섭에 목적을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와의 접촉을 통해 포괄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클린턴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보다 현직 국무장관의 남편이라는 점이 더욱 주목을 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 대화의 탐색전 성격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포괄적 패키지를 제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데까지 나아갈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방북을 계기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끄는 미국의 외교라인이 본격적으로 북한문제에 달려들게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대통령은 세금 문제가 결부된 국내 문제에 관한한 의회의 동의없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건강보험 개혁과 지구온난화 대처 문제로 의회에 발목이 잡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앞세워 여기자 석방과 함께 북핵문제의 포괄적 타결을 모색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