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전인 1987년  7월 20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 미국 MIT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을 다니던 중 배낭여행을 하던 이재환(李宰煥 당시 25세·사진)씨가 북한 기관원에 의해 납치됐다. 대검차장을 지낸 이영욱 당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아들인 이씨는 서울대 영문과를 다니다 83년 미국으로 건너가 MIT에 진학했다.

    사건 발생 19일이 지난 1987년 8월 8일 북한 중앙방송은 “이씨가 제 3국을 통해 의거 입북했다”고 선전 공세를 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본인의 자유 의사를 확인하자던 한국 정부의 요구에는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 ▲ 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아들 이재환씨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사진을 들고 망연자실해하는 변양자씨와 이영욱씨 부부 ⓒ연합뉴스
    ▲ 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아들 이재환씨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사진을 들고 망연자실해하는 변양자씨와 이영욱씨 부부 ⓒ연합뉴스

    이씨는 이후 평양에서 열린 귀순 기자회견에 나와 ‘남조선의 어두운 현실’을 강조하고 자신이 의거 입북했음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88년 말 일부 언론에 의해 그가 북한에서 결혼했으며  다국적 기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88년 정치권을 떠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유엔고등판무관실 등 국제인권단체 등에 백방으로 아들의 귀환 지원을 호소했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국정원은 1999년 이씨가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돼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2001년 제 3차 남북 이산가족 교환 방문 때 아들을 만나려고 생사 확인 요청을 했던 이 변호사에게 이씨가 북에서 사망했다고 통고해 왔다.

    이씨 가족과 납북자 단체 등은 대부분 이씨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혹 행위에 못이겨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정확한 경위를 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북한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