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경찰이 세칭 '유모차 부대' 엄마들을 조사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엄마들의 행위에 대한 평균적인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느낌 같은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자연스러운 느낌' 운운한 대목의 '자연스러움'의 기준은 무엇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묵살하기로 한다. 그런 것은 그냥 느껴서 아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규명될 일인가? 

    한 마디로, 엄마 된 사람은 그래선 못 쓰는 법이다. 남보다 유달리 겁이 많아서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필자는 손자 손녀들이 저희들끼리 아파트 앞 구멍가게에 가는 것조차 꺼린다. 아파트를 나서면 단지내 차도가 있는데, 행여 아이들이 "야, 나가자!"하고 좌우 살피지 않은 채 냅다 뛰어나가다가 지나가던 차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저 노릇을 어쩌나, 하고 걱정 또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보호라고 나무랄 이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게 할애비 된 자의 어쩔 수 없는 심정이니 어찌 하겠는가? 

    엄마들이 식품의 건강성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그것과 유모차 동원은 별개 사항이다. 사안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어떻게 엄마가 아기를 그런 상황의 그런 장소에 감히(?) 데리고 나갈 착상을 했다는 것인지, 이 못난 구세대의 머리와 심장으론 도저희 헤아리려야 헤아릴 방도가 없다. 그렇게 하면 경찰이 진압작전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경우라면 그것은 더 더욱 기가 막힐 일이다. 유모차 아기들이 무슨 방패막이 도구란 말인가?

    남들이 "아기 데리고 나가자"고 부추기더라도 엄마라면 "우리 아기는 위험해서 안 돼요" 라고 말해야 그게 '평균적인 사람의 자연스러운 정서' 아닐까? 필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그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고. 그 남편과 시부모는 또 뭐라고 했을까고. 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편, 시부모가 몰랐을 수도 있고, 그들도 잘하는 짓이라고 동조했을 수 있다" 그 어느 쪽이든 필자로서는 기절을 할 일이다. 전자라면 남편과 시부모는 있으나 마나 한 '무(無)존재란 이야기이고, 후자라면 더 이상 염두에 두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케케묵은 '봉건잔재'일까? 그렇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그리고 기꺼이, 유모차로 아기를 동원하지 못하게 하면서 '봉건잔재'라는 소리를 듣는 쪽을 훨씬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선택하겠다. 

    '유모차 부대' 엄마 여러분, 어쭙잖은 이론 따위는 집어 치웁시다. 그냥 내 말을 귓가로만 들어 두세요. 그러면 못씁니다. 다신 그러지 마세요. 아기를 그런 데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남편 되시고 시부모 되시는 여러분, 아내와 며느리가 그럴 땐 단호하게 말해 주세요. "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아가, 그게 도대체 무슨 천지가 뒤집힐 소리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두 번 다시 그런 말 꺼내지도 마라"

    '유모차 부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집 며느리들이 새삼스럽게 더 예쁘게 보인다.  정말 반(半) 발자욱만 옆으로 나가도 별 별 세상이 다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