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훈 대법원장이 13일 촛불시위 관련자 재판에 간섭했다는 논란을 부른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재판 내용이나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며 '엄중 경고'했다.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 행동으로 법관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가 손상된 점에 대해 유감"이라며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보장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 대법관도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일부 소장 판사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14일 재판권 독립을 안건으로 단독판사회의를 열기로 했다. 일부 판사들이 전국 법관에게 돌릴 연판장을 작성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지난 8일 윤리위 권고 이후 일부 판사들은 미온적인 조치라며 신 대법관 사퇴를 요구하는 글을 내부통신망에 올리기도 했다.

    대법원장이 결정한 조치는 진상조사단의 판단과 윤리위의 경고 권고에 이은 이번 사태에 대한 최종 결정이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엄중 경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소장 판사들이 여기서 더 나아가 집단 행동을 벌이면 사법부가 분열된다. 소장 판사들이 수뇌부를 몰아붙여 굴복시키면 상급심 판단이 하급심을 규율하는 사법부 권위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법원 지휘부가 소장 판사들과 맞대결하는 상황이 돼버리면 법원이 두 쪽이 나고 법원 분열은 사회 전체를 두 쪽 내는 사태로 발전할 수가 있다.

    소장 판사들은 신 대법관이 작년 10~11월 "위헌 제청이 되지 않은 (촛불시위 관련) 사건은 현행 법에 따라 재판을 계속 진행하라"는 등의 이메일을 판사들에게 보낸 것이 재판 독립을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 내부 통신망에서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 판사도 있다. 소장 판사들이 그렇게 위중한 일로 판단했다면 이메일을 받고 나서 바로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그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다섯 달이 지난 올 2월에야 일부 언론에 당시 이메일 내용을 유출해 자기 이름을 숨기고 언론이 신 대법관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이런 행동은 사법부 바깥의 힘을 끌어들여 사법부의 독립성에 흠집을 낸 것이란 비판을 들을 만하다. 법관은 상사(上司)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론과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신 대법관이 한 일을 놓고 사법 행정권의 재량 범위 내 행동이라고 보는 시각과,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하는 법관의 독립을 해친 행위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견해가 이렇게 서로 다른 일에 대해 내가 옳으니 내 생각만 관철시켜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사회 갈등을 중재하는 업무를 맡은 법관답지 않은 행동이다. 소장 판사들이 수(數)의 힘을 동원해 법원 수뇌부를 몰아붙인다면 그건 '신영철 사태'가 아니라 '사법부 하극상'이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를 촉발시킬 수 있다.

    법원장의 진중하지 못한 행동이 사법부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법원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가 사법부와 사회에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숙고해 신중하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