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히 있는 외에 할 일이 뭐가 있느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해를 넘겨 장기화하는 국회 파행사태에 사실상 `침묵모드'다. 지난 2일 대구 방문에서 "대화로 타결됐으면 좋겠다"는 원칙적 차원의 짧은 언급이 있었지만, 이외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법을 비롯한 쟁점법안과 관련한 입장표명도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대치국면에 대한 구체적 발언도 내놓지 않고있다.

    주류 일각에서는 당내외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난관에 봉착한 여권을 위해 힘을 보태는 `한마디'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도 제기한다. `정치적 지도자'로서 현 정국에 대한 본인 입장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외부 여론도 슬슬 일고있다. 

    물론 주요직책을 맡지 않고 있어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총체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정치지도자로서 확실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반사적 이익만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심지어 기축년 새해 첫 행보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지역을 방문한 것을 놓고 "정치지도자로서 불우이웃이나 국가적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기 보다 지역구나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지도자가 아니라 계파 수장의 모습으로 비쳐졌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래저래 침묵 모드에 대한 미묘한 파장이 이는 셈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주변에선 침묵 이외에 운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대화는 실종되고 밀어붙이기만 있는 전략부재의 상황이 형식.방법론적 측면에서 한심한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정권 초기에 잘해보겠다고 드라이브를 거는 데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이 측근은 "박 전 대표는 정권 초기에는 이명박 정권이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며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한다는 생각"이라며 "당인으로서 당지도부가 하는 일을 조용히 따라가는 것이지, 박 전 대표가 나서서 뭐는 되고 뭐는 안된다고 비판을 해서는 더 곤란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손 쓸 도리없는 파행으로 치닫기까지 국회 운영 미숙을 비롯해 쟁점법안에 대한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부에서 비판을 제기해 전선을 흐릴 수도 없다는 데에 침묵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개혁입법' 내용 면에서도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출총제 폐지 및 금산분리 등 규제완화는 재임 시절부터 본인 소임이었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미디어 관련법과 관련해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우선 처리하겠다는 강경 방침에는 의견이 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측근 중진 의원은 "국회에서 개혁법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자체가 잘못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비판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니냐"면서 "박 전 대표에게 원론적인 말 이외에 입장을 밝히라는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친박측에서는 오히려 "우리도 할 도리는 다 하고 있다"며 비판론을 반박한다.실제 파행 이후 의원총회에 대부분 친박 의원들이 꼬박꼬박 참석한 것을 비롯해 계파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은 `무관'이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당 지도부와 국회의장 등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의원은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당이나 국정운영에 우리가 반대한 적이 있었느냐"면서 "이번에도 할 일은 하고있지 않느냐"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