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권력의 심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DJ)은 삭풍의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막막한 표정을 간간이 짓곤 했다. 1997년 12월18일 저녁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순간, 그가 환호한 표정은 대국민용이었다. 도대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아닌가? 국정 경험이 전무한 동교동 사단 아닌가? 여기에 자신의 고령(高齡).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포장해 일단 표를 얻었지만 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데엔 준비가 됐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DJ는 당선 확정 직후 이렇게 지시한다. “내가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쓰겄는지 후딱후딱 연구해 보고해요!” DJ를 꿰뚫어보던 장성민이 ‘아데나워 용인술’을 내놓는다.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의 고민을 벤치마킹하자. 그도 74세의 고령이었다. 잿더미가 된 서독의 재건을 위해서라면 나치 정권에 참여한 인물이라도 국정 운영 능력이 있으면 과감히 중용한 용인술. 나일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DJ의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우선 나라를 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에 함몰돼 정체성만 따지는 건 하수(下手)나 할 일이다. 김중권을 대통령비서실장에 과감히 앉혔다. 김중권? 전두환·노태우 시절 국회의원 3선,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정당 골수. 그러나 여권 생리를 알고 국정 경험이 있어야 관료를 장악해 일할 것 아닌가? DJ는 파격적인 인사를 더 밀어붙였다. IMF를 상대해 구제금융을 따올 적격자를 찾아라. IMF 근무 경험이 있는 경제 전문가를 알아보니 이회창 대선 캠프에서 경제특보를 맡았던 이헌재가 있었다. 이헌재를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에 앉혔다. DJ는 자신을 좌파로 의심하는 미국을 향해서도 안도의 메시지를 던졌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란 슬로건은 그렇게 나왔다. DJ의 용인술과 대미 접근법은 적중했다. IMF 극복! 평가에 인색하면 안된다.

    이명박 정부는 IMF 사태와 비교할 수도 없는 쇠고기 문제 하나로 휘청거리고 있다. 그 원인은 국정 운영에 달통하지 못한 청와대의 인적 구성. 권력의 심장은 서생이 아닌 국정 경험의 대가(大家)들로 포진돼야 한다. 새벽부터 일해도 국정이 풀리지 않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