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은주 엔터테인먼트 부장이 쓴 <'비례(非禮)대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좀 냉소적인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만드는 두 가지 요소로 '인맥과 돈'을 꼽아 왔다. 그리고 그 말은 꽤 오랫동안 사실처럼 여겨졌다. 누구는 실세 누구의 인척이다, 누구는 얼마를 쓰고 당선이 됐다더라, 하는 말들 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문제가 터지기도 했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선거가 비교적 전보다는 깨끗하게 치러진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지역구 공천을 둘러싸고 파국, 갈등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총선의 수질(水質)은 확실히 좀 맑아진 것 같았다.

    문제는 '비례대표'에서 터졌다. '한나라당 공천에 문제가 있다'며 박차고 나와 살림을 따로 차린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1번 당선자는 허위 경력 등의 문제로 '불투명한 공천'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고, 진보를 이념으로 삼은 '창조한국당'의 당선자는 전과가 4범이나 되는 것 때문에 논란 중이다. 통합민주당의 당선자는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한나라당의 '호남 몫'으로 상위 순번에 배정됐다는 당선자는 '○○대 경영대학원 인맥'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매관매직 시비'가 일고 있다.
    여론이 이처럼 크게 반응하는 건, 비례대표제가 '소수자 배려 제도'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비례대표제의 기능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법률, 의료, 보사, 노동 등 전문가 집단이 국회에 들어가 더 선진적인 법을 만들라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으로서의 기능이다. 법은 아예 국회의원이나 시·군·구 의원의 비례대표 명단의 홀수 번호에 '여성'을 지명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 빈민운동가 등 다른 사회적 약자들도 비례대표제를 통해 의회에 진출했다.

    그런데 만일 '여성이라서 뽑았다'는데 알고 보니 '어려운 당의 살림을 돕기 위해 돈을 내놨기 때문'이라면, '소외받는 지역 인물이라 우대했다'는데 알고 보니 '권력자와 학교 동문이기 때문'이라면?

    소수자 배려라는 명분이 결국 '다른 비리'를 감싸는 포장지에 불과하다면, 정책의 진정성은 물론, 그 방식을 통해 의회에 진출한 다른 의원들에게도 대단한 실례다. 더욱이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 우대' 정책이라는 게 '문제성 여성의 합법적 국회 취업'을 도와주는 핑곗거리가 된다면, 그런 제도는 여성 모독 쪽에 가깝다. 다른 소수자들인 장애인, 성적 소수자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몇 년 전, 한 여성 탤런트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누드 화보를 찍겠다고 해 세상을 발칵 뒤집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도 웃을 만큼, 명분과 방법이 완벽하게 불일치한 기획으로 그녀는 한동안 매장되다시피 했다. 도와주겠다며 상대방을 모독하는 상황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정도야 다르지만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브루니의 '누드 사진'으로 '자선'을 하겠다던 독일인 수집가도 비슷한 꼴을 당했다. 그는 브루니 누드의 경매수익금 9만여 달러를 캄보디아 프놈펜의 어린이병원에 기부하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어린이병원 재단의 회장은 "캄보디아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며 기부를 거절하면서 "이 제안에 숨겨진 의도는 경매와 사진 작가를 홍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망신을 톡톡히 당한 것이다.

    배려(配慮)에 비리(非理)가 끼면 비례(非禮)가 된다. 지금 비례(比例)대표제 모양이 딱 그렇다. 그러나 유권자들이란 4년에 딱 한 번, 투표일에만 마음에 안 드는 정치집단을 '단죄'할 수 있을 뿐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말은 이럴 때 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