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 먹고 살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해피 벌스 데이 투 유"가 요즘 얘기지 옛날에야 그게 뭔 소린지도 몰랐다. 몇 년 동안도 계속해서 생일을 모르고 지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어쩌다 기억한다면 잘해야 미역국에 김치 정도지 그 이상은 할 게 없었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 보니까 생일이 잔칫날 수준이다. 아이들 생일은 더 세게 한다. 초등학생들이 벌써 초청장 보내고 엄마들이 나서서 어디 모여서 축하해 주고 난리다. 더 세게 하는 집은 아예 뷔페에 예약을 하고 잠간이지만 밴드까지 동원된다. 그만큼 살기가 좋아졌다는 것이어서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땐 너무 심한 경우도 본다. 

    결혼 하고 나서 생일을 아내가 챙기기도 했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론 오랜 세월 생일과 상관없이 살다보니 생일을 챙기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때도 있었다. 러다가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가 하나 둘 늘어 백 여 명의 가족이 되니 언제부터인지 내 생일 날 교인들이 집에서 반찬 한두 가지씩 준비하여 주일예배 후 함께 식사를 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점심 먹는 데다 반찬 몇 가지 더 놓는 거지만 그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보다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도 계신데 단순히 목사라는 것 때문에 생일상을 받는다는 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해마다 ‘올해부터는 하지 말라고 해야지’하고 생각하다가 그만 또 생일을 맞고 맞는다. 요번엔 정말로 정신 차리고 있다가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싶어 미리 여전도회장한테 당부를 했다. 그랬더니 "이들 생일도 챙기는데 목사님 생일은 당연한 거 아니냐?" 한다. "아들이나 성도들은 당연히 축하해 줘야겠지만 난 다르다" 했다. 

    어쨌든 나를 위해서 차리는 생일상이 나를 불편하게 하니 진정으로 하지 말고 정히 마음이 찜찜하면 5만원만 달라고 했다. 그걸로 밥 사 먹겠다고 했다. 내가 밥을 많이 먹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큰돈도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번엔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작정이다. 

    난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데 한 해 끝자락이라 어느 핸 생일이 두 번 돌아오고 어느 핸 한 번도 없는 해도 있다. 바로 금년이 두 번 있는 해다. 물론 계절로 치면 한 겨울에 한 번이지만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데 난 측근들한테 “나의 생일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누구든지 알면 준비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뭐 이순신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다. 

    생일날 축하를 받기도 해야 하겠지만 진짜 생일 날 해야 할 일은 자기를 낳아 키워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것도 도리일 듯 싶다. 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로서는 해산의 고통을 감수하신 날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축하를 받는 것과 아울러 고통 가운데 낳아주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게 맞는 얘기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