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대(對) 박근혜 사과 회견을 했다. 8.19일 이후 3달 가까이 끌어온 한나라당의 갈등과 파행은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당권과 내년 4월 총선 공천 문제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이 후보 측근들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당을 새롭게 바꿀 것이라는 걸 암시했으며, 여의도 정가에서는 공공연하게 내년 초(총선 전) 조기 전당대회 개최설이 유포되었다. 실제로 시·도당 위원장 경선과정과 중앙당 및 시·도사무처 인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위해 뛰었던 인사들은 낙선되고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당권 싸움’은 이 후보 측근들이 대선 승리 후 당권을 장악하고 대폭적인 공천 물갈이를 통해 박 전 대표 세력을 대거 제거할 거라는 우려와 공포에서 출발했으며, 이 후보 측의 진정성에 회의를 느낀 박 전 대표를 장고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당원들은 지난해 7월 11일 강재섭 대표를 선출했으며 그의 임기는 내년 7월 10일까지다. 강재섭 대표의 임기는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당은 강 대표를 중심으로 중립적인 공천심사위를 만들어 내년 4월 18대 총선에 임해야 한다. 대통령 당선자라고 해서 당헌을 무시하면서 당을 좌지우지하려고 해선 안 된다. 모든 일은 당헌·당규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이 후보는 어제 회견에서 “강재섭 대표를 중심으로 당헌·당규가 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 대선과 총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후보는 아울러 “정권 창출 이후에도 주요한 현안을 협의하는 소중한 동반자로서 박 전 대표와 함께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승자의 독선과 오만을 반성하고 박 전 대표에게 사과한 것이다.

    박 전 대표도 오늘 이 후보의 기자회견에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라고 화답했다. 박 전 대표는 ‘원칙의 박근혜’ 답게 닷새만의 칩거를 끝내고 한나라당 중심의 정권교체 의지를 명확히 했지만, "이 전 총재가 비난을 감수하고 출마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여러 가지를 뒤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이는 한나라당 갈등사태는 잠시 봉합된 것일 뿐 근본적인 화합책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이 향후 지속적으로 당 화합방안과 승자독식 구도에 대한 박 전 대표 측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12일 대선후보·대표 4자회동을 갖고 ‘당 대 당’ 통합과 후보단일화 원칙에 합의했다. 지난 2003년 11월 참여정부 주도세력의 새천년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분열됐던 범여권은 4년 만에 가칭 ‘통합민주당’의 단일정당으로 복원됨에 따라 BBK 사건 등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봇물처럼 제기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향후 이러한 험한 파고는 강재섭 대표가 당을 확실히 장악할 때에만 일사불란하게 돌파할 수 있는 법이다. 이 후보와 박 전 대표 측의 틈새가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닌 만큼 그 틈새를 좁히는 역할도 강재섭 대표의 몫인 것이다.

    이 후보는 최측근들로 구성된 ‘6인 회의’를 해체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6인 회의는 사실상 선거대책위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 역할을 해 왔으며 당내에서는 "후보가 당 공식 기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그동안 당의 공식 선거대책기구를 무력화하는 ‘옥상옥’의 기구가 선대위원장인 강재섭 대표의 권위를 실추시킨 측면이 있다. 이 후보가 강재섭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대선 과정과 대선 이후의 역할을 줘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 일각에서는 “강 대표는 대표가 되는 과정에선 박 전 대표의 도움을 받았지만, 경선과 그 이후 과정에서 이 후보 쪽 사람이 됐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는 강재섭 대표를 폄훼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한 때 대선 후보를 꿈꾸다가 ‘대권-당권 분리원칙’에 입각해 당권을 선택한 강재섭 대표는 당의 분열을 막고 경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선 과정에서 강 대표의 소명은 무능한 좌파정권 종식을 열망하는 당원과 국민의 바람을 위해 헌신하는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