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전 연세대 특임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소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흰 원고지 뒤에 낙서를 하면서 그것이 그럴듯하게 생각돼서 소련을 내심으로도 입 밖으로도 두둔했다…당연한 일이다.”

    시인 김수영이 1960년대 초에 발표한 시편 ‘전향기(轉向記)’의 첫 대목이다. 자기검열을 몰랐던 자유인 김수영만이 써 낼 수 있는 글귀다. 새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계기(契機)시편이지만 시인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소련을 욕하지 않은 ‘진보적’ 지식인의 원산지는 유럽이다. 스탈린의 대숙청과 강제수용소를 알았지만 그걸 욕하는 것은 자본주의 미국을 돕는 이적행위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카뮈와의 논쟁에서 사르트르가 보인 태도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 ‘진보파’가 특히 칭송한 대상은 소련보다 붉은 중국이다. 중국 침략 때의 만행에 대한 죄의식도 작용해 이를 보상하려는 듯이 칭송했다. 문화대혁명 때 최고조에 달했고 그것이 공산당 내부의 무자비한 권력투쟁임이 밝혀진 후에는 애써 함구했다.

    동서의 진보적 지식인을 따라 우리 쪽에서도 소련과 중국을 욕하지 않았다. 실정법의 제약으로 일본에서처럼 터놓고 칭송하지는 못했지만 심정적인 동조는 희귀 현상이 아니었다. 억압적인 정치 현실에 대한 반동 형성이기도 했고 사회주의의 표방 가치에 끌린 면도 있고 사회주의 현실에 대한 정보 부족 탓도 있었다.

    현실에 눈먼 진보적 지식인들

    1980년 이후 ‘운동권’이 과격해지면서 젊은 세대를 휩쓴 사회주의 열풍은 이 시절을 다룬 최근의 문학 속에 그 세목이 드러났다. 밤새워 읽고 토론했다는 책은 대개 급진적 혁명 이론이나 실천 지침서다.

    ‘진보적’ 지식인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애써 구별하고 양자를 전체주의 체제라는 범주로 파악하는 관점을 공격했다. 그러나 정치 실천과 국민 통제와 인간 경시에서 양자는 너무나 흡사하다. 나치스의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캅카스, 카자흐스탄에서 농민 6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이란 개념, 인간이란 개념을 내팽개친 가공할 상징적 폭거다. 스탈린 시대의 희생자는 최소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스탈린은 소련군 점령하의 유럽에서 자유선거로 정부를 세우겠다고 얄타회담에서 약속했다. 그러나 최초로 실시한 헝가리 선거에서 공산당이 패배하자 소련군의 개입으로 공산 정부를 세우게 해 위성국가로 만들었다. 이 정책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다. 체코에서의 공산정권 수립 과정은 쿤데라의 소설에도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 ‘진보적’ 지식인의 관행과 연관된다. 사실상의 영토확장주의지만 자생적 혁명으로 간주하며 소련에 대해선 제국주의란 말을 쓰지 않았다. 미국의 독점물로 남겨 두기 위해서다.

    동유럽권의 붕괴와 뒤이은 소련의 해체 이후 사회주의 현실의 내막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경제 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실했고 인권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동독 비밀경찰의 기록은 전 국민을 밀고자로 만들었음을 보여 주었다. 교사와 학생, 처남과 매부가 상호 밀고자요 정보원임이 드러났다. 막대한 희생과 생명 파괴를 수반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념 중독자들은 내심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루카치는 만년에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최악의 사회주의가 낫다”는 말을 남겼다. 사상가의 발언이기보다 현실에 눈먼 이데올로그의 망언이다. 뒤늦게 망자를 험담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북(北)의 어둠엔 눈감고 입 봉해

    실패한 실험과 전체주의와 옛 꿈에 미련을 갖고 있는 듯한 인사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기현상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우리 쪽 그늘에 대해선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만 북의 어둠에 대해선 눈감고 입 봉하고 참선한다. 루카치의 망언을 연상하게 한다.

    강제수용소나 인권 유린에 대한 증거가 없다든지 전체주의 선전물에 대해 감동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자기기만적 자유에 속한다. 문제는 그런 시대 역행적 사고의 인사들이 진보를 자처하며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는 점이다. 대권 지망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