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일간지 신문의 여론조사 발표를 보면 한나라당의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높다. 그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이례적’이라고 평할 정도다. “나홀로 고공비행”이니 '밴드왜건‘효과니 하면서 그의 높은 지지율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다.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아마 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그러나 그의 지지층을 분석해보면 여권의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여권 지지자들이 마땅한 후보가 없어 고육지책으로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은 이명박의 이념적 성향이 이들의 지지를 받을 만큼 중간지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한 때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고건에 대한 지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갑자기 하락하게 되었다. 그 말은 여권의 충성이 각 개인의 양심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직적 몰표, 그것이 여권 표 성향의 실체다.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보여준 예가 바로 지난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일어난 민주당의 지지표 전환의 이변이다. 당시 한화갑의 지지율이 단연 선두였으나 광주대회에서 갑자기 한화갑의 지지가 사라지고 노무현의 지지가 급상승하였다. 각 개인의 양심적 판단에 따른 선택이 이렇게 요동칠 수는 없다. 양심이 없는 자들이 누군가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그냥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또한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후보 결정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노무현의 지지도는 정몽준에 대한 지지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낮았었다. 그러나 막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몽준의 지지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노무현에 대한 지지가 뛰어 올랐다. 역시 각 개인의 양심에 따른 선택이라기 보다는 조직의 지도, 좋게 말해 지도지 조직의 어느 권력자의 뜻에 따라 조직의 표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명박에 대한 현재의 높은 지지율은 거품일 가능성이 크다. 조직적 몰표가 그 배경에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 조직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짐작할 수 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는 현재 한국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은 현재 그 권력자에 의해 ‘간택’된 행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행운이 지속될지 아니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할지는 오직 범여권의 대선 승산 여부에 달려있다. 김근태와 정동영이 평화미래세력을 통합하여 신당을 만들고 후보를 옹립하겠다고 나섰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어떤 식으로 뒤섞어도 그 밥에 그 나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운찬 아니라 그 어떤 깜짝쇼를 벌이더라도 국민이 이번에는 그리 쉽게 움직일 것 같지 않다.

    민주주의는 각 개인 단위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조직이 어떤 한 권력자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왕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왕국이나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노예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야만적 사회다. 이명박은 현재 그 야만적 권력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보여진다.

    경제, 그것은 특정인의 성향에 의해 활력을 얻는 친인격적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유경쟁이라는 몰인격적 제도에 의해 활력을 얻는 객관적 제도다. 오직 제도에 의해 생명을 얻고 활력을 얻는 객관적 제도일 뿐이다. 따라서 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신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이면 경제는 살아난다.
    이명박의 지지율의 상당부분이 반시장경제 세력의 몰표라고 여겨지는 만큼 그에 대한 높은 지지가 반드시 시장경제에 대한 높은 지지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한화갑에 대한 지지가 그의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사라졌듯이 이명박에 대한 지지도 그 권력자의 선택에 따라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 자유애국세력은 사실 특정인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을 떠나 무조건적으로 특정인을 지지하는 소위 ‘박빠’니 ‘명빠’니 하는 사람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창달에 방해가 된다. 무조건 특정인에게 매달리는 것은 노예근성의 표현이다. 특정인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정책을 내세우고 그 정책을 공약으로 받아들이도록 잠재후보자들에게 압박을 가하여야 하고, 그 정책을 받아들이는 후보를 우리는 지지하여야 한다. 현 지지율 분포에 우리가 흔들릴 이유가 없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