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2일 사설 '정치테러는 민주주의의 공적(公敵)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다. 귀밑에서 뺨 쪽으로 60바늘이나 꿰맸고, 경동맥(頸動脈)이 다칠 뻔했다고 한다. 살인미수에 가까운 테러다. 민주화된 나라에 어떻게 이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폭력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테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를 응징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의 초동(初動)수사는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에서 테러 용의자들이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테러를 한 지충호는 알코올 검사에서 0이 나왔다. 경찰이 공모 여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박종렬의 음주 사실로 변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건을 제대로 보고받았건 받지 않았건, 공식 회견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건의 진상을 흐리려 했다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에는 정치 테러가 여러 차례 있었다. 백색 테러도, 적색 테러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은 대부분 그 배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묻혔다. 이번 사건만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배후가 있는지, 지충호와 박종렬이 공모했는지,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다른 공모자는 없는지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밝혀내야 한다.

    권력 집단이 아닌 무뢰배의 흉기 테러는 해방 직후의 혼란상에서나 볼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때야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도 없고, 이념 갈등과 정치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치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다. 냉전이 종식되고, 이념 대결의 승패가 드러난 게 언제인데 좌와 우, 지역과 지역의 대결이 극한을 치닫고 있다.

    이렇게 국민이 찢어져 서로 증오하고 대립하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갈등을 증폭시키고,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 왔다. 여야가 정상적인 대화와 협상을 못한다. 대중을 선동하고 동원하는 게 정치권의 일상사가 됐다. 그러다 보니 일반 사회에서도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토론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집단심리에 휩쓸린 극단주의자가 언제든 또 다른 범행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나마 여야 정치권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자칫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공격은 국민을 더 큰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방송과 인터넷 등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정치인을 천박하게 희화화한 패러디와 증오심을 부추기는 편향적 보도는 없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목적만 옳으면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 약자의 폭력은 정당방위라는 식의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없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지금도 일부 인터넷에는 이번 테러를 옹호하고 피해자의 인격을 모욕하는 댓글이 부지기수다. 네티즌들도 죄의식이 마비된 이런 식의 사이버 테러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점을 심각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