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체육계의 원로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이 16일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의 유해는 서울 삼성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발인은 20일 9시다. 유족들은 조촐한 가족장을 지내기로 결정했으며 서울 또는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1918년 개성에서 출생한 민관식 전 체육회장은 경기제일고보와 수원농대, 일본 경도대를 졸업했으며 정계와 관계, 학계, 체육계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3,4,5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던 고인은 6대 국회의원에 이어 10대 국회에서 부의장과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또 1966년에는 대한약사회 회장을 맡았고 1971년부터 74년까지는 문교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마당발'로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사무실 문에 아예 '평생 현역'이라는 글귀를 써붙였던 고인은 특히 체육계와 오랜 기간 깊은 인연을 맺어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장에 올라 1971년까지 한국체육을 이끈 고(故) 민관식 씨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하며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 스포츠 근대화의 토대를 이룩했다. 생전에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을 가장 자랑스러운 공으로 내세웠던 고인은 `선수촌을 지으려면 태릉으로 가보라'는 꿈을 꾸고 난 뒤 태릉의 부지를 물색을 했다는 일화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축구와 육상, 테니스, 탁구, 정구협회 등 5개 종목에 걸쳐 단체장을 맡았던 고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테니스 마니아'로 60년대 자신의 아호인 소강(小崗)을 딴 `소강배 전국중고테니스대회'를 창설해 50여년이 넘도록 사재를 털어 개최했었다. 

    고인은 생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훈장 등을 서품받았다. `건강을 잃으면 인생 전부를 잃는다'는 생활신조를 지녔던 고인은 미수(米壽)의 나이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즐겼으며 마지막까지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기원하다 눈을 감게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조(81) 여사와 병의(63.개인사업), 병찬(52.개인사업), 병환(49.공무원) 등 3남이 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