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의해 최초 건립…6·25때 북한군 인민재판소·美 CIA 지부로 사용되기도풍전아파트로 시작해 트레머호텔→코리아관광호텔→유림아파트→충정아파트로 불려
  • ▲ 1937년 준공된 충정아파트. 그 뒤로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 빌딩이 보인다. ⓒ김성웅 기자
    ▲ 1937년 준공된 충정아파트. 그 뒤로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 빌딩이 보인다. ⓒ김성웅 기자
    일제시대인 1937년에 준공돼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은 아파트가 있다.

    6·25전쟁 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합동고문단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던 충정아파트는 지난해 6월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철거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9월5일 오전 9시 서울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내려 길을 따라 걸었다. 앞에는 8차선 도로가 뚫려 있었고, 주변으로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을 비롯한 화려한 빌딩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걷고 있었고 가게 사장들은 손님 맞이에 분주했다.

    전형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이곳 일대는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인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과 미 해병대가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던 장소였다.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는 건물은 세월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이제 남은 건 외벽이 녹색으로 칠해진, 동네와 너무나 이질적인, 쓰러져가는 아파트가 전부다. 수십년동안 한 자리에 머무르며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은, 준공 86년을 맞은 충정아파트가 그것이다.
  • ▲ AP통신의 맥스 데스퍼 기자가 찍은 사진에 담긴 6·25전쟁 당시 충정아파트. 멀리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충정아파트다. ⓒ국방부 블로그
    ▲ AP통신의 맥스 데스퍼 기자가 찍은 사진에 담긴 6·25전쟁 당시 충정아파트. 멀리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충정아파트다. ⓒ국방부 블로그
    아파트 내부 우중충한 분위기 맴돌아… 천장 뜯겨져 나가고 페인트 벗겨져

    아파트 내부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눈 앞에 펼쳐졌다. 특유의 텁텁한 냄새는 물론, 오래된 아파트가 으레 그렇듯 우중충한 분위기가 공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천장이 뜯겨져 나갔고, 거기서 떨어진 잔해들이 계단에 널브러져 있었다. 벽면 곳곳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건물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곳도 많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더러 있었다. 복도에는 입주민들의 생활 집기들이 놓여 있었고, 마당에는 세월을 품고 있는 장독대가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아파트 한가운데 위치한 중정에서 하늘로 높이 솟아 있는 굴뚝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마치 자부심처럼 느껴졌다.
  • ▲ 충정아파트 중정에 위치한 굴뚝. ⓒ김성웅 기자
    ▲ 충정아파트 중정에 위치한 굴뚝. ⓒ김성웅 기자
    1932년 이 일대 부지를 사들였던 도요타 다네마쓰(豐田種松)라는 일본인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지하1층, 지상4층의 건물을 지었다. 당시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없었지만, 주인의 이름인 '도요타'를 한자음으로 따서 '풍전(豐田) 아파트'라고 불렸다. 훗날 충정아파트로 불릴 이 건물의 첫 번째 이름이다.

    충정아파트는 당시 지상 4층짜리 최고급 건물이었다. 주로 일본인들이 임차해 살았고 최신 설비를 갖췄다고 해서 젊은 중산층이 선호했다. 1940년 충정아파트는 호텔로 용도 변경돼 운영되다 해방 후 미군정에게 귀속됐다.

    충정아파트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6·25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충정아파트 지하를 인민재판소로 사용했다. 이곳에서 북한군들은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한미연합군이 서울 탈환 작전을 수행하던 중 충정아파트 일대에서 격전을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서울 수복 이후 전쟁이 끝나기까지 충정아파트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합동고문단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 ▲ 위에서 밑으로 바라보고 찍은 충정아파트 중정. ⓒ김성웅 기자
    ▲ 위에서 밑으로 바라보고 찍은 충정아파트 중정. ⓒ김성웅 기자
    전쟁 이후 충정아파트는 '트레머 호텔(Traymore Hotel)'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유엔군 전용 호텔로 사용됐다.

    1962년 5월 김병조라는 인물이 충정아파트의 소유권을 얻게 된다. 6명의 아들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다고 주장하는 김씨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충정아파트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줬다. 김씨는 4층이던 건물을 5층으로 증축하고 '코리아관광호텔'로 건물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얼마 안가 김씨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고 건물은 다시 정부에 귀속되면서 다시 주거용 아파트인 '유림아파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1979년 아파트 앞 도로를 확장 공사하면서 건물의 3분의 1가량이 철거됐고, 이때 변경된 구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 충정아파트 내부 복도. ⓒ김성웅 기자
    ▲ 충정아파트 내부 복도. ⓒ김성웅 기자
    40년 동안 치러진 철거 vs 존치 공방전… 지난해 6월 철거 결정

    충정아파트라는 명칭은 충정로라는 이름에서 따와 1980년대부터 쓰였다. 1979년 최초로 철거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충정아파트 이해 관계자들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거냐 존치냐를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한때 역사적 가치 등을 이유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안전 문제와 주민 갈등을 이유로 지난해 6월 철거를 결정했다.

    대신 같은 위치에 충정아파트의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보존 의미가 큰 건축양식을 3D스캐닝 등 다양한 형식과 콘텐츠를 활용해 보존할 방침이다.

    안병숙 충정아파트 재개발사업 추진위원장(마포로5-2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은 "충정아파트 일대가 재개발될 예정인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입주민 보상이나 이주 계획을 세우려면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조합 설립 전 단계"라면서 "조합을 설립하려면 주민들에게 조합 설립 동의서를 받는 것이 중요한 데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고 부연했다.

    이어 "해당 부지에 28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질 예정"이라며 "공동주택 192가구가 들어서며 지하1층부터 지상2층은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