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대부분 떠나고 적막감만…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흔적도서울시 "안전성 D급 건축물이기 때문에 철거 후 공원 등으로 조성"아파트 측 "시에서 제시한 보상금 적어… 납득 못하는 입주민 있다"
  • ▲ 아파트 중앙에 위치한 공용 마당에서 찍은 회현 제2시민아파트. 구름다리가 7층 입구로 이어지고 있다. ⓒ김성웅 기자
    ▲ 아파트 중앙에 위치한 공용 마당에서 찍은 회현 제2시민아파트. 구름다리가 7층 입구로 이어지고 있다. ⓒ김성웅 기자
    특유의 분위기로 영화 <친절한 금자씨>, MBC 예능 <무한도전>,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의 촬영 장소가 된 아파트가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이자 부촌의 상징이기도 했던 회현제2시민아파트(회현시민아파트). 1970년 준공돼 반 세기 이상 서울의 역사와 함께한 이 아파트는 올해 철거가 확정돼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18일 오전 9시, 서울지하철 4호선 회현역 3번 출구에서 남산 방향으로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10여 분을 걸었을까, 저 멀리 세월의 풍파를 맞고 우두커니 서 있는 회현시민아파트가 보였다.

    아파트 입구에는 '서울시는 SH공사를 내세워 회현시범아파트 저가 보상을 철회하고 시장원리에 맞는 보상을 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한 쪽이 뜯겨진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 ▲ 아파트 정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대부분 뜯어진 채 펄럭이고 있다. ⓒ김성웅 기자
    ▲ 아파트 정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대부분 뜯어진 채 펄럭이고 있다. ⓒ김성웅 기자
    아파트에 도착하니 왜 이곳이 영화·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쓰이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서민의 애환이 묻어 있는 곳이며, 이제는 입주민 대부분이 떠나가고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압도하는 묘한 곳이었다.

    아파트 내부로 들어서자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대낮임에도 아파트 복도에는 전등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아파트 내부는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각 가정집 앞에는 가스 계량기가 있었는데, 그 앞에서 끊어진 가스관과 굳게 잠긴 밸브는 더이상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입주민 대부분이 떠난 이곳은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복도 벽면에 붙은 전기 검침표는 2018년에 멈춰 있었고, 소화기 점검표 역시 2019년 이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가득했다.
  • ▲ 아파트 복도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곳이 많았다. ⓒ김성웅 기자
    ▲ 아파트 복도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곳이 많았다. ⓒ김성웅 기자
    어두컴컴한 긴 복도 끝에 난 작은 창으로 한 줄기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한 아파트 복도 내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 ▲ 오래전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표어. 다른 한쪽에는 낙서가 있다. ⓒ김성웅
    ▲ 오래전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표어. 다른 한쪽에는 낙서가 있다. ⓒ김성웅
    그러나 한때 이곳에도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는 흔적이 옅게나마 남아 있었다. 아파트 복도 벽 한 편에 어린이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짓궂은 낙서들이 있었다. 그 옆에는 '착한 어린이는 낙서도 안 하고 휴지도 안 버립니다'라는 표어도 붙어 있었다.
  • ▲ 회현 제2시민아파트 중정. ⓒ김성웅 기자
    ▲ 회현 제2시민아파트 중정. ⓒ김성웅 기자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ㄷ' 자 구조로 돼 있어 아파트 중앙에 중정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는 잡초가 자라 있었고, 계단에는 녹색 이끼가 겹겹이 끼어 있었다. 주민들이 남기고 간 오래된 장독대가 중정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 바깥쪽에는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있었다. 이름모를 잡초와 덩굴로 뒤덮인 낡은 그네가 한때 이곳이 놀이터였음을 짐작케 했다.
  • ▲ 그네가 잡초와 덩굴로 뒤덮여 있다. ⓒ김성웅 기자
    ▲ 그네가 잡초와 덩굴로 뒤덮여 있다. ⓒ김성웅 기자
    이 아파트에는 아직 소수의 입주민이 살고 있다.

    30년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김모(40대·여) 씨는 "옛날에는 애들도 많았고 살기 편했다. 그러나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후 관리가 안 되면서 급속히 노후화가 진행됐다"고 한다.

    김씨는 그러면서 "어머니가 여기서 오래 사셨다. 어머니가 이곳을 너무 좋아해 계속 살고 싶어 하시지만 연세도 많으신 데다 아파트도 철거 수순을 밟고 있어 곧 이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 회현 제2시민아파트 전경. ⓒ김성웅 기자
    ▲ 회현 제2시민아파트 전경. ⓒ김성웅 기자
    아파트 입구에서 출근을 서두르던 이모(60대·남) 씨는 회현동 일대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이 아파트에서만 20년 정도 살았다고 한다.

    이씨 역시 "요즘은 사람이 거의 없어 썰렁한 분위기"라며 "총 352가구가 있는데 이제 다 떠나고 50가구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씨는 그러면서 "입주민이 듬성듬성 있다 보니 단열이 안 돼 겨울에는 엄청 춥고 동파도 빈번하다. 반대로 여름에는 벌레나 쥐가 들끓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심지어 "복도에 불이 다 꺼져 밤이 되면 한 치 앞도 안 보여 입주민들은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다니지만 외부인들은 들어오기를 꺼려해 배달 직원도 오지 않는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 ▲ 아파트 복도에 놓여진 가구. ⓒ김성웅 기자
    ▲ 아파트 복도에 놓여진 가구. ⓒ김성웅 기자
    회현제2시민아파트 관리운영위원회 박용수 회장은 서울시의 해당 아파트 재개발 방침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서울시에서는 이곳에 공원을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뒤에 남산이 있는데 왜 공원을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현재 중구에는 주거지가 별로 없어 주거공간을 좀 더 마련해서 인구를 더 채워줘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듯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 "서울시에서 이주 입주민에게 제시한 보상금은 2억원 미만인데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입주민은 그 보상액을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목속리를 높였다.
  • ▲ 복도 빨랫줄에 옷가지 등이 걸려 있다. ⓒ김성웅 기자
    ▲ 복도 빨랫줄에 옷가지 등이 걸려 있다. ⓒ김성웅 기자
    서울시 관계자는 "1970년에 완공된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안전 규정상 D급 이하의 건축물이다. 건물의 안전도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철거 수순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소수의 세대가 거주 중인데, 현재 원만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입주민이 모두 이주하면 철거 공사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서울시는 해당 부지를 도시 경관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원 형태로 조성할 계획이다. 주거지로 사용하는 계획은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