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투약분의 3배 '0.1g 마약음료'… 강남 학원가에 뿌린 中 조직 재판 시작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발생한 '마약음료' 사건에 가담한 일당이 첫 재판에서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진아)는 마약류관리법위반(향정) 및 범죄단체가입 등 혐의로 기소된 길모(26)·김모(39)·박모(36·중국 국적) 씨 등 3명의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범죄 혐의에 관한 피고인들의 견해를 확인하고 증거조사를 계획하는 절차다. 정식 공판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지만 이날 재판에는 세 사람 모두 출석했다.

마약음료 제조·공급자 길씨는 2023년 2월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입해 보이스피싱 총책인 이모 씨의 지시를 받아 우유에 필로폰을 넣은 음료 50개를 제작, 미성년 피해자 14명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6명에게 마약음료를 먹은 사실을 신고한다고 협박해 금액을 갈취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도 있다.

중간책 김씨는 지난 2~4월 변작(變作) 중계기를 이용해 인터넷 번호를 국내 번호로 바꿔 협박전화를 도운 혐의를 받는다. 

중국 국적인 박씨는 보이스피싱 총책 이모 씨의 지시에 따라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 10g을 인천시 부평구 소재 주택 현관 등에 놓고 길씨가 수거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법정에서 길씨 측은 마약음료 제조와 운반 혐의만 인정했다. 자신이 만든 마약음료를 미성년자에게 먹게 하거나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할 줄은 전혀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일부 부인했다. 

재판 과정에서 길씨는 "보이스피싱 총책이 '너로 인해 가족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 협조하라'며 협박해서 시킨 대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중계기를 이용해 중국 인터넷 전화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변작한 혐의는 인정했다. 다만 "보이스피싱 업무인 줄 몰랐다"며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근무한 적도 없고, 취득한 이익이 범죄수익으로 사용될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공갈미수와 관련해서도 모의한 적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 10g을 은닉하고 길씨에게 수거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필로폰 운반 혐의 등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날 길씨는 마약음료 제조와 운반을 제외한 나머지 범죄사실에 대한 고의성 입증, 김씨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외 나머지 고의성 여부, 박씨는 병합심리와 양형 부분이 재판의 쟁점이 될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다음달 28일 첫 공판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 조사 결과, 해당 마약음료 1병에는 필로폰 1회 투약분인 0.03g의 3배가 넘는 양인 0.1g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미성년자 13명과 학부모 6명이며, 청소년 피해자 중 6명은 환각 등의 증상을 겪어 어지럼증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중국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사건 전반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 총책 이모 씨를 추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