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위안부합의 이행중단' '징용 판결'에 놀라… 日외교청서에 '김대중-오부치' 빠져일본통 조희용 "일본은 즉각적 대응 않는 나라… 한국 입장 계속 관망할 것"태영호 "日, 역사인식 계승 않겠다고 보는 건 과잉해석… 장기적 관점 필요"조희용 "文 위안부합의 이행중단과 징용 판결, 日우경화 추세 속 불신 키워"기시다 '文 위안부합의 이행중단'으로 타격… "日 극우파 득세, 지한파 입지 좁아져"
  •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이 지난 11일 공개한 '2023 외교청서'에서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에 따른 일본의 호응조치인 '일본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이 누락됐다. 

    이 배경에는 문재인정부 시절 '위안부합의'의 이행중단,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은 '2018년 대법원 판결' 등으로 한층 깊어진 일본의 불신,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 추세가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외교청서를 놓고 "우리 정부가 일본이 채울 거라며 건넨 절반의 물을 일본정부는 우리에게 온전히 쏟아버린 셈"이라고 비난하며 공세에 나섰다. 

    외교청서에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한국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 극도로 어려운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의 건전한 관계 회복을 위한 방안"이라고 평가하며 사의를 표명했다는 서술은 있지만,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일본의 호응조치가 빠진 것은 '일본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해석이다.

    외교전문가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섣부른 판단"

    그러나 일본 전문가들과 외교 전문가들은 이러한 해석은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자 "섣부른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외교부(당시 외교통상부) 동아시아지역 협력대사, 동북아2과장 등을 역임한 조희용 전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14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번 방일해 한일 정상회담을 했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급변해서 우리 식으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소장은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현 단계에서 판단하는 것은 조금 시기상조"라며 "다만 일본은 기존의 방침을 견지하면서 윤 정부의 국내 대응을 당분간 주목하며 자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조 전 소장은 그러면서 "청서의 '워딩'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역내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이라는 '워딩'에 따라 일본의 대(對)한국정책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좀 무리이고, 앞으로 일본의 대응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현 상황에서 섣불리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 내용이 기술되지 않은 점을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과잉해석으로 일본의 고의성을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태 의원은 "모든 국가는 자신들이 취할 이익을 계산하며 움직인다. 한일관계에서 첨예한 입장차를 단기간에 좁히기는 어려우며 일본의 변화를 섣불리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본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에 감동해 독도에 대한 입장을 바꾸거나 역사문제에서 사죄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문제는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文 위안부합의 이행중단과 징용 판결, 日 우경화 추세 속 불신 키워"

    조 전 소장은 "문재인정부 시절 위안부합의 이행중단은 한일 불신을 키운 하나의 계기"이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신이 확대된 결정적 배경은 일본의 우경화 추세에 있다"면서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 추세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불신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부터 시작돼 △문재인정부의 위안부합의 이행 중단과 징용재판으로 확대됐다는 세 가지 흐름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불신이 확대된 결정적 배경은 △중국의 부상 △30년에 걸친 장기침체 △2010년 센카쿠 문제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등으로 가속화한 일본의 우경화 추세"라는 것이 조 전 소장의 설명이다.

    조 전 소장은 "외교청서에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이 누락됐다는 것은 결국 일본이 우경화 추세에 따라 역사 문제에 관한 한 더는 양보할 수 없다는 국내 분위기가 있는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일본은 한국이 한일 간에 일종의 양해사항이었던 독도·위안부·징용 등에 대해 자국이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 ▲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왼쪽) 당시 일본 외무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왼쪽) 당시 일본 외무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尹외교팀, 치밀하지 않은 방일 사전·사후계획 아쉽다"

    "윤석열정부의 외교팀에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치밀한 사전·사후 설계와 계획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한 조 전 소장은 "일본에 징용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전에 한일 양국이 정상회담 전후로 이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각각 국내 홍보를 어떻게 할지까지 합의하고 아주 정교하고 세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외교청서 문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윤 대통령의 방일 결과에 대해 양국이 서로 대외적이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언급 요지도 방일 전에 미리 합의를 봐야 했다"고 비판했다.

    조 전 소장은 "제가 주니어 때부터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일본과는 마지막까지 치밀하게 교섭해야 한다"며 "위안부합의가 뒤집어진 이유 중 하나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현 총리)이 합의 다음날 '이번 위안부합의는 10억 엔과 소녀상을 바꾼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브리핑했다는 소식이 도쿄로부터 전해지면서 한국여론이 뒤집어졌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 전 소장은 "위안부합의 이행 중에 문재인정부가 그 이행을 사실상 중단시킴으로써 '사실상 파기'의 효과가 발생했는데 여기서 일본의 이중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조 전 소장은 "일본은 위안부 추모탑도 세우고 미신고 위안부 수만 명의 위령을 위로하는 사업도 해야 한다. 그런데 10억 엔(약 100억원)만 주고 끝나버렸다. 일본은 문재인정부가 합의 이행 자체를 중단시켰다는 사실을 명분으로 삼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위안부합의를 파기했으므로 이제 다 끝났다'고 선전해왔다"고 꼬집었다.

    "일본은 합의를 '사실상 파기'(이행중단)한 한국에 불만을 갖고 있는 한편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언급한 조 전 소장은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합의문 워딩을 바꿔 언론을 통해 선전하고 있고, 이를 한국언론이 그대로 받아 쓰고 있다"고 질타했다.

    "위안부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하나의 선언(declaration)이다. 한국과 일본이 합의한 조치를 각각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조치가 마무리되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며 "결과적으로 1975년까지 이행된 한일청구권협정과 달리, 위안부합의는 그 합의사항의 이행이 멈춘 것"이라는 것이다.

    '위안부합의' 주역 기시다의 국내정치적 상황

    또 "당시 외무상으로서 위안부합의를 이끌어냈던 기시다 총리는 한국정부가 위안부합의 이행을 중단하자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며 일본정부의 행보를 기시다 총리가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과 연결지어 봐야 한다고 조 전 소장은 짚었다. 

    조 전 소장은 "히로시마 G7 정상회의가 끝나면 기시다 총리가 국회를 해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역대 총리에 비해 지지율이 높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국내정치적 포석을 두고 있으면서, 소수 파벌의 수장으로서 소위 자민당 내 역학구조상 자민당 내의 기존 방침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전 소장은 "일본은 과연 윤 대통령이 한 이야기가 실현될 것인지를 신중하게 관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10여 년간 정체상태에 있던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의 움직임을 계속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文정부의 위안부합의 '이행중단'으로 '지한파' 입지 위태로워져…"

    일본 정치권의 내부상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문재인정부가 위안부합의를 파기(이행중단)하자 일본 내 지한파들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다"고 강조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라면 피해자들이 요구할 때마다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박근혜정부 때 체결한 위안부합의를 문재인정부가 파기(이행중단)하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한국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합의를 번복하고 방침을 뒤집을 수 있다는 불신이 깊어졌다"고 지적했다.

    소식통은 이어 "기시다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선언 일부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호응하기를 바라는 한국 여론을 일본정부가 과연 몰랐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일본 정치권 내 극우세력은 문재인정부의 위안부합의 파기(이행중단)로 고조된 반한(反韓)감정을 국내정치에 이용해왔고 기시다 총리는 이들을 설득하기에 어려운 입지에 있다"고 언급했다.

    "韓, 다양한 대응 위해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국가"

    일본 외교청서는 한국을 "국제사회의 다양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규정하며 "북한에 대한 대응 등을 염두에 두고 안전보장 측면을 포함해 한일, 한·미·일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을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규정했던 2022년 외교청서보다는 진일보했지만,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평가했던 2017년 4월 발간된 청서와 비교하면 후퇴한 평가다.

    조 전 소장은 "한국과 '핵심 가치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이 청서에 없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양국이 핵심 가치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서 "일본의 전략가들이랄지 일본의 대외정책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일본이 한반도와 좋은 관계를 갖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일본의 국익을 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실 그 점을 활용하고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 전 소장은 "한국정부의 위안부합의 이행중단에 이어 징용문제(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은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자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1965년 한일 합의체제를 뒤집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국가 간 합의를 뒤집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치를 공유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일본 국내에서 통하는 논리이자, 어떻게 보면 일본이 워싱턴에서 로비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을 설득하는 논리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전 소장은 "일본이 청서에 이러한 표현을 쓰든 안 쓰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특히 미국이 한미동맹에서 한국에 기대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위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 2021년 10월 31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31일 경북 울릉군 독도 선착장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 2021년 10월 31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31일 경북 울릉군 독도 선착장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한미동맹' 있는 한 독도는 우리 땅"

    일본이 외교청서에 '한국이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정부가 '대법원 판결'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은 2018년부터다.

    "평화적 수단을 통한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1954년, 1962년, 2012년 한국정부에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등을 제안했지만, 한국정부는 이 제안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일본은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 국제법 법칙을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도 끈질긴 외교노력을 해나갈 방침"이라는 내용도 올해 청서에서 유지됐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소장은 "독도문제를 ICJ에 회부한다는 것은 '독도에 분쟁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우리로서는 응할 수 없는 일이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국제사회에서 확고히 하려면 엄청난 홍보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한미동맹이든 한중관계든 주요 국가들과 건전하고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정도로 국제정세는 '지정학적 시대'로 돌아왔다. 특히 이처럼 불안정한 국제정세에서는 국제법에 정통한 외교관과 학자들이 국제사회에서 정기적으로 영어로 메시지를 발신하고 ICJ와 같은 국제법 관련 국제기구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나름대로 국제사회에서 홍보와 역사교육을 통한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독도는 우리 것이라는 기록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있는 한 독도는 우리 땅이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주축으로 동아시아의 안보와 안보가 확보되는 상황을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더 공고히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