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문화재 약탈 부대에 맞선 '모뉴먼츠 맨' 활약상 눈길전후 약탈 문화재 반환 둘러싼 '독·미·소 첩보전' 흥미진진
  • 2014년 개봉한 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The Monuments Men)'은 2차 세계대전 당시, 500만점 이상의 도난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 한 가운데로 뛰어든 '예술품 전담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예술품을 지키는 것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는 '모뉴먼츠 맨'들의 숨겨진 실화를 공개해 큰 관심을 모았다.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프랭크 스톡스는 실존 인물로 연합군 특수 부대인 '기념물, 예술품, 기록물 지원부대(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program, MFAA)'를 창설한 장본인이다. 그는 대원들을 이끌고 브뤼헤의 성모자상, 렘브란트의 자화상, 르노아르의 소녀상 등 수많은 미술품들을 히틀러의 손에서 구해냈다.

    "모나리자를 지켜라" 루브르 특급 비밀작전


    '문화재 전쟁: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도서출판 지성사 刊)'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모뉴먼츠 맨'들의 활약상을 비롯해 ▲종전 후 약탈 예술품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 ▲가문 소장품을 되찾으려는 후손들의 힘겨운 노력 ▲제3세계의 문화재 환수 운동 등을 소개한 책이다. 문화 예술품 약탈이라는 시선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 흥미로운 역사 교양서라 할 수 있다.

    약탈의 마수를 피한 모나리자를 비롯한 대가의 작품들에 얽힌 숱한 이야기와 더불어 나치 약탈 부대 'ERR(로젠베르크 제국 사령부)'과 이들에 맞서는 미술사학자들로 편성된 연합군 '모뉴먼츠 맨', 그리고 박물관 종사자들의 활약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미술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것으로 알려진 히틀러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품을 '퇴폐 예술'로 낙인찍었고, 개인 미술관을 장식할 목적으로 ERR에 예술품 약탈 권한을 부여했다. ERR이 조직적으로 거둬들인 약탈품은 1940년 11월부터 1944년 7월까지 파리의 개인 컬렉션 203곳에서만 2만1903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맞서 전쟁 역사상 최초로 편성된 '기념물, 예술품, 기록물 지원부대'는 나치가 숨긴 500만 점에 이르는 보물찾기에 나서면서 상당수 예술품들을 제자리에 돌려보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총통미술관 구상에서 비롯된 히틀러의 광적인 문화 예술품 약탈에 관여한 인물들과, 약탈된 문화 예술품의 과거 합법적 소유자들이나 그 후손들이 회복을 주장하는 근거와 증거를 소개하는 여러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또 약탈한 그림과 조각, 공예품을 비롯해 도서관 장서, 가구와 동전, 무기 등과 대량의 금괴(2017년 가치로 환산하면 10억유로 상당)를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미생물의 공격을 막는 천연 저장고인 '소금 광산'에 숨긴 나치 행위가 결과적으로 그 문화 예술품들을 보호한 셈이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나치에 당한 만큼 "모든 것을 다 가져오라"는 스탈린의 특명에 따라 소련 전리품 부대 '트로피 여단'이 꾸려졌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수집 대상은 독일의 산업 시설과 전략 물자들로, 이런 것을 소련으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예술품도 그 대상이었다. 트로피 부대가 약탈한 주요 대상물은 미적 가치가 거의 없는 청동 제품으로,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다 녹여버렸다.

    소련이 미국과 영국 등이 모르게 운영한 전리품 부대는 두 진영의 불신이 시작된 냉전의 출발이었다. 소련은 1945년 베를린에서 가져간 제우스 신단(페르가몬 제단)을 1958년 동독에 반환하면서 문화재 반환 원칙을 철저히 체제 우월의 선전 도구, 외교 카드로 삼았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전리품 국유화를 선언했지만, 전리품 부대가 약탈한 약 4만건의 문서가 들어 있는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의 기록물 '금융 왕조의 실록'을 등가 교환 형식으로 돌려주면서 반환의 실마리를 풀었다. 러시아는 여전히 100만점 이상의 제2차 세계대전 전리품을 보유한 '약탈품 대국'이다.

    6.25전쟁 당시 문화재 보호 나선 국립박물관 직원들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미술품으로 꼽히는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지존' 모나리자는 어떻게 나치 약탈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을까? 그 미소만큼이나 베일에 가린 그녀의 전시 행적도 따라간다. 모나리자는, 루브르 직원들이 암호로 역정보를 흘려 나치로부터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이들이 소장품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기울였던 노력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문화재 보호 활동에 나섰던 국립박물관 서울 본관 직원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총성과 포성이 울리는 급박했던 상황에서 한국 최초의 미술 전문기자인 이구열 선생이 경복궁과 덕수궁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의 전시 소개(疏開) 과정을 연재한 1972년도 서울신문 기사를 간추려 실었다.

    문화재 약탈로 홍역을 치른 지구촌이 최근 반환에 나서는 분위기가 확연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아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공습에 대비해 격납해 두었던 국보급 문화재 50만 점을 폴란드로부터 돌려받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독일 문화와 지성의 정수를 이룬 괴테, 모차르트, 루터 등의 수기 원고와 악보가 폴란드에 남아 있다. 독일은 '전쟁의 마지막 포로'라고 부르며 환수를 추진하지만, 폴란드와의 협상은 겉돌고 있다.

    일본 역시 일본의 기업가 마쓰카타 고지로가 1910~1920년대에 구입한 고흐, 세잔, 모네, 쿠르베 등의 작품 14점을 프랑스가 돌려주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해 온갖 것을 약탈한 독일과 일본이 역설적으로 문화재와 예술품을 상실한 다른 나라의 아픔을 절감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버젓이 내걸린 자국 소유의 문화 예술품들을 보는 독일과 일본 국민의 심경은 어떨까?

    식민지를 경험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약탈 문화재 반환 목소리가 거세다. 남미의 페루는 국가적으로 환수 운동을 펼쳐 마추픽추 유물을 돌려받았다. 미국 국토안보부와 FBI는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시인 '길가메시'가 새겨진 점토판을 이라크에 돌려주려 한다.

    우리 역사의 '아픈 손가락' 발해 유물은 역사 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중국이 일본 왕궁에 자리한 발해 시대의 석비 '홍려정비' 환수를 추진하는 속뜻은 역사를 자국의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의도, 즉 발해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데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 서울신문 국제부를 거쳐 체육부 선임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기철이 유럽, 미국,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품 약탈과 회복 과정을 다룬 국제사회 관련 뉴스와 정보를 총정리했고, 저자 이상근은 발해 유물을 둘러싼 동북아의 역사 전쟁 관련 이야기를 정리했다.

    저자 소개

    ◆ 이기철: 1960년대 중반 경남의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뛰놀던 산기슭에서 나온 하얀 사금파리를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바닥에 금을 긋고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사금파리들이 발견된 곳이 옛날 옛적엔 절이 있던 자리였다거나 서울로 이사 간 동네 아저씨의 집터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부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서울신문에 기자로 입사했다. 미국 미주리주립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연수했다. 사회부, 산업부, 국제부 기자 등을 거쳐 체육부, 정책뉴스부, 국제부, 온라인뉴스부 데스크를 지냈다. 현재는 국제부를 거쳐 체육부에서 선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재벌가 맥(공저)'이 있다.

    ◆ 이상근: 1960년대 초, 충남 논산에서 육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성원으로 초등(면), 중등(읍), 고등(시), 대학(특별시)에서 공부했지만, 살아가는 길은 역순으로 살고 있다.

    문화유산의 회복 운동은 가장 역사적인 곳에서 뿌리를 내려 울창한 산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은 백제의 왕도 부여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고대 백제를 통해 한중일 삼국의 희망 찾기와 전 세계 문화재 피탈국가들의 플랫폼 구축이 그것이다. 여기에 별별 수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 마을 조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