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 우울함 속 희망 없는 폐지 수거 노인
  • ▲ 폐지수거 노인 이경자(77‧가명) 씨가 자신의 수레 앞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건율 기자
    ▲ 폐지수거 노인 이경자(77‧가명) 씨가 자신의 수레 앞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건율 기자
    "이놈의 다리는 이제 내 말을 안 들어."

    폐지 수거 노인 이경자(77‧가명) 씨의 오른쪽 다리가 연거푸 땅에 반원을 그었다. 앞서 나간 왼쪽 다리를 중심으로 오른쪽 다리가 컴퍼스처럼 곡선을 그리며 끌려갔다. 8년 전부터 시작된 통증을 방치해 무릎이 굳은 탓이다. 

    귀까지 어두운 이씨에게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 보시라"고 큰소리로 말하자 "곧 죽을 사람한테 왜 돈을 쓰느냐. 손녀들 과일 하나 더 사 주는 것이 낫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씨의 수레에 쌓인 폐지 사이로 바나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거뭇거뭇하게 멍든 바나나가 물컹물컹해 보였다. 마음씨 좋은 마트 주인이 공짜로 준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11년 전 아들을 잃었다. 3년 뒤 이북에서 내려온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르니 수중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전쟁통에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이씨는 덧셈과 뺄셈도 할 줄 몰랐다. 

    이씨는 "어디 채소 몇 개 떼어다 팔려고 해도 셈이 돼야 말이지"라고 토로했다. 그런 이씨에게 몸뚱어리 하나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폐지 줍는 일이라고 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여러 공장을 전전하던 이씨는 노인이 되자 폐지 수거 일에 종착했다.
  • ▲ 은평구 갈현동 고물상 '행복자원'. 가운데 위치한 철판 위에 수레를 올리면 자동으로 무게가 측정된다. ⓒ이건율 기자
    ▲ 은평구 갈현동 고물상 '행복자원'. 가운데 위치한 철판 위에 수레를 올리면 자동으로 무게가 측정된다. ⓒ이건율 기자
    하루 12시간 노동, 시급 1000원 안팎… "귀먹고 다리 저는 노인을 누가 쓰겠나"

    지난 6일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고물상 '행복자원'을 찾았다. 아침 8시, 고물상은 이른 아침부터 노인들로 북적였다. 다들 자신의 키만큼 쌓인 폐지를 한가득 싣고 차례를 기다렸다. 한 노인이 고물상 바닥에 깔린 철판 위로 올라가니 벽면 전광판에 '36'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36키로(kg)요." 

    고물상 주인이 무심히 외쳤다. 노인은 1000원짜리 두 장과 동전 몇 개를 받아 들고는 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마트나 가게에서 폐지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은 오전 7시와 오후 7시다. 폐지 수거 노인들은 이 '골든타임'에 맞춰 움직인다. 

    윤이재(91‧가명) 씨는 오전 6시에 집을 나선다고 한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은 오후 8시가 돼야 끝난다. 쉬는 시간은 따로 없다. 윤씨는 "점심 때쯤 나물에 밥 비벼 먹으면서 쉬는 거지. 뭐"라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윤씨의 하루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 정도다.

    하루의 절반을 일하고도 윤씨가 손에 쥐는 돈은 '쥐꼬리'다. 입치레하기도 힘든 수입이다. 폐지가 많이 나오는 날이면 하루 1만2000원, 운이 없는 날이면 8000원 정도를 번다. 2021년 최저임금(8720원)의 11% 수준이다. 오전 내내 일해 번 돈이 5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에 사라진다. 윤씨는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윤씨는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종이를 꺼내 펼쳐 보였다. 1000원짜리 지폐 몇 장과 함께 국가유공자증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씨는 자신은 '행복자원'을 찾는 다른 노인들보다 형편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노동과 터무니없는 소득에도 폐지 수거 노인들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다른 일을 위해 필요한 기초적 지식이 없고, 건강하지도 않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주관한 '폐지 수거 노인 실태에 관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폐지 수거 노인 중 무학력자는 37%에 이른다. 스스로 건강이 나쁘다고 응답한 노인은 71.7%다. 

    "다른 일을 찾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윤씨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귀먹고 다리 저는 노인들을 누가 쓰겠습니까?"
  • ▲ 폐지수거 노인의 손. 자주 다쳐 퉁퉁 붓고 거칠다. ⓒ이건율 기자
    ▲ 폐지수거 노인의 손. 자주 다쳐 퉁퉁 붓고 거칠다. ⓒ이건율 기자
    더위, 욕설, 사고… 폐지 수거 노인은 안녕하지 않다

    현장을 찾았던 6일, 서울은 30도를 웃돌며 후텁지근했다. 빼빼 마른 최희숙(78‧가명) 씨의 땀방울이 뺨을 타고 폐지 위로 떨어졌다. 

    "더운 날에 미안해서 어쩌나?" 

    최씨는 대신 수레를 끌던 기자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손수레의 무게보다 더위가 몸을 짓눌렀다. 수레를 끈 지 15분이 채 안 됐는데도 땀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더워서 평소에 어떻게 하는냐"고 물으니 최씨는 "어지러울 때는 갓길에 잠시 세우고 쉬면 된다"고 답했다.

    더위뿐 아니라 폐지 수거 노인들은 많은 위협에 노출돼 있다. 2020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폐지 수거 노인들의 직업상 유병률(전체 인구 중 직업으로 인해 장애‧질병 또는 특정 심리적 상태를 지닌 사람의 백분율)은 일반 인구 대비 10배가 넘는다. 육체노동자와 비교해도 4배 이상 많이 다친다. 어깨·무릎·발목 등 신체적 고통과 함께 자살과 자해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최씨도 몇 달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인도가 좁아 수레를 차도로 끌고 나갔다고 한다. 그 순간 옆에서 오던 자동차에 수레가 부딪혔다. 충격으로 바닥에 넘어진 최씨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고 했다. 운전자는 험한 말과 욕설을 내뱉고 사라졌다. 애써 모은 폐지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그러니까…." 최씨가 말을 흐렸다. "눈·코·입 달린 것만 똑같지. 사람들 마음은 다 달러."

    이경자‧윤이재‧최희숙 씨에게 '꼭 지원해 줬으면 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지원은 다 받고 있지. 이렇게 살다 가면 된다"고 했다. 윤씨는 "됐다"며 말을 돌렸고, 최씨도 "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고 한탄만 했다. 그들은 삶의 종착지에서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문가 "돈 없어 병원 방문 못하는 경우 있다"… 소득 보장이 우선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우선 폐지 수거 노인의 최소한의 소득은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폐지 수거 노인 대부분 소득이 부족한 만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소득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의료보험이 잘되어 있지만, 최소한의 소득보장이 되지 않으면 병원을 방문하지 못해 건강을 잃는 노인들이 있다"는 것이 박 명예교수의 지적이다.

    박 명예교수는 폐지 수거 노인을 안타깝게만 보는 세간의 편견도 꼬집었다. "무조건 폐지 수거 노인의 일자리를 대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박 명예교수는 "이들의 일을 존중하되 부족한 부분은 보충해 주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 폐지수거 노인이 폐지를 고물상에 판 뒤 갓길에 앉아 쉬고 있다. ⓒ이건율 기자
    ▲ 폐지수거 노인이 폐지를 고물상에 판 뒤 갓길에 앉아 쉬고 있다. ⓒ이건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