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철거 아니라 해체일 뿐"이라며 27일 물품 정리… "철거 일방 통보한 서울시에 유감"
  • ▲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공간'이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한다. 해당 시설이 설치된 지 2년3개월여 만이다. 유족 측은 서울시가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통보했다고 유감을 표하며 광장 공사가 끝난 후 재존치시키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세월호 유족단체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27일 오전 10시쯤 기억공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철거 및 임시공간 이전에 따른 견해를 밝혔다.

    유경근 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내부 작품이나 기록물을 모두 정리한 후에는 내일일지 모레가 될지 모르지만, 가능한 이른 시간 안에 이 기억공간 건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며 "기억공간 내 전시물과 기록물을 가족들이 직접 정리해 서울시의회 1층 전시관으로 옮겨 임시 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 "물품 정리 후 이른 시간 안에 건물 해체 시작"

    "기억공간은 건축사·시공사·시민들 모두 정성을 모아 함께 만든 건물이고 작품이기 때문에 무단으로 부수고 폐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 유 위원장은 "가족들과 이 기억공간을 직접 시공했던 시공사가 정성스럽게 해체한 뒤 안산 가족협의회로 가져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위원장은 다만 "기억공간의 활용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기억공간을 안산으로 아예 이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기억공간을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은 "시의회를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서울시의회가 정치적 공방이나 입장 차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생명과 안전, 민주주의 열망을 담기 위한 프로그램을 담고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해 시의회 차원의 노력을 하겠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시의회를 거듭 추켜세웠다.

    유족 측은 서울시를 향한 유감도 드러냈다. 김종기 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공사를 위한 철거는 당연히 해야 하고 당연히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그 철거에는 전제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김 위원장은 "기억공간은 공사가 끝난 후 분명히 재존치돼야 하며,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협의체 구성이 있어야 철거에 협조할 수 있다고 지난해 7월부터 일관되게 요청해 왔다"며 "서울시가 그런 부분에 있어 난색을 표할 때마다 그 부분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었다"고 말했다.

    "기억공간 광장에 재존치돼야" 요구

    "하지만 서울시는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일방적인 철거 통보를 했다"고 밝힌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서울시와 서울시장의 행태는 묵과할 수 없는 것으로, 앞으로도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가족들과 시민들은 그냥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기억공간은 단순한 건물의 의미가 아니라 추모와 기억,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을 하는 열린 소통의 공간"이라며 "이게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공사가 끝난 뒤 어떻게 다시 기억과 민주주의, 촛불의 역사를 오롯이 광장에 담아낼지 고민해주시길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기자회견 후 기억공간 내부 물품을 직접 포장하며, 서울시의회로 옮길 준비를 했다. 서울시는 이르면 이날 오후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2019년 4월12일 세워진 목조 가건물이다. 서울시는 세월호 참사 직후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천막과 분향소를 철거하는 대신 전시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하고 해당 공간을 마련했다. 

    당시 서울시와 유족 측은 2019년 말까지 기억공간을 운영하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11월까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착공이 지연됨에 따라 기억공간 운영도 덩달아 연장됐다.

    이후 서울시와 유족 측은 기억공간 철거 문제를 두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대립해왔다. 서울시가 기억공간 철거를 통보하자 유족은 이에 반발하며 지난 23일부터 농성을 벌였다. 서울시는 전날 기억공간을 세 차례 방문해 유족들과 면담을 시도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 기억공간 철거는 전날 현장을 방문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서울시의회 측이 유족을 설득하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