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오세훈 직접 와서 풀어야"… 서울시 "광화문광장 공사 후 재설치 못한다"
  • ▲ 서울시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예고한 가운데, 유족 측이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철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 서울시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예고한 가운데, 유족 측이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철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서울시가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공간을 철거하려 했으나 유족들의 반발로 미뤄졌다. 시는 이날 세월호 기억공간 현장을 찾아 유족들을 상대로 면담을 진행했지만, 유족 측은 서울시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은 이날 오전 7시20분께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아 유족들에게 기억공간 철거 협조공문을 전달하려 했다. 김 과장은 "기억공간 철거시한이 오늘(26일)이라 설득을 통해 철거하려 한다"며 "오늘 철거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철거계획 변함없어" vs 유족 측 "공문 안 받겠다"

    그러나 유족 측은 "서울시 측과 만나지 않겠다. 공문도 안 받겠다"고 면담을 거부했다.

    김 과장은 현장에 모인 기자들에게 "서울시에서 가족들에게 전시물을 이관하고 반출하는 것을 협조 요청하는 문서를 가지고 왔으나 받지 않겠다고 해 공문 요지를 구두로 말씀드렸다"며 "오늘 중으로 기억공간을 철거할 것이고 최대한 몸싸움 없이 원활히 철거가 이뤄지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 공사 시행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설치 당시부터 정해진 것으로, 예정됐던 행정 처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뒤엎을 순 없다"며 "정해진 행정절차는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서울시는 오전 11시께 현장을 다시 찾아 유족과 면담을 했으나 서로 입장 변화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유족 측은 "서울시에서 이렇게 계속 찾아오는게 세월호 가족 입장에서는 압박으로 느껴진다"며 "오세훈 시장이 직접 와서 가족들과 만나 협의 과정을 꾸리며 절충이 돼야만 풀어나갈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이에 김 과장은 "대외적으로 발표한 철거 날짜가 있기 때문에 일단 계속 이해와 설득을 구하려고 찾아와서 말씀을 드리는 점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대응했다.

    서울시의 기억공간 철거 예고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현장을 방문했다. 이날 예고없이 광화문광장을 찾은 송 대표는 "세월호 기억공간은 참사를 당한 희생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다"라며 오세훈 시장을 향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탄핵의 강을 넘어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오 시장도 세월호 기억공간이 탄핵의 강을 넘어 모든 국민이 하나된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길 "기억공간 보존 가치 있어"… 배진교 "강제철거로 해결 못 해"

    송 대표는 "세월호 기억공간은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고 모든 국민에게 의미가 있다"며 "광화문은 세월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정권이 교체되고 단죄를 받아 새 정부가 탄생한 혁명적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유족들과 면담한 뒤 "이 문제는 강제철거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 "광화문광장은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오 시장은 기억공간 철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광화문광장이 재구조화 공사 이후에도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지속될 수 있도록 유족들과 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이 26일 서울시 측과 면담 후
    ▲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이 26일 서울시 측과 면담 후 "서울시 철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민석 기자
    한편 서울시는 기억공간 철거를 위해 지난 23일부터 사흘 연속 기억공간을 찾아 내부에 설치된 사진과 물품 등을 정리하려 했지만, 세월호 유가족들과 관련 단체 활동가 등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세월호 유족들은 서울시가 기억공간 철거를 예고하자 나흘째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철거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공사가 끝나면 광장 내 적당한 위치에 크기를 줄이더라도 기억공간을 설치·운영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 기억공간 재설치 요구

    서울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유족들이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천막과 분향소를 철거하는 대신 전시공간을 마련해주기로 하고 세월호 기억공간을 조성했다. 당시 서울시와 유족 측은 2019년 말까지 기억공간을 운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까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착공이 지연됨에 따라 기억공간 운영도 덩달아 연장됐다.

    서울시는 기억공간이 당초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시설이었고, 새 광화문광장은 지상에 구조물이 없는 보행광장으로 조성되는 만큼 기억공간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시는 이날 오전 공식 입장문을 통해 "세월호 기억공간 역시 다른 장소로의 이전 설치나,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 후 추가 설치는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광화문광장에 특정 구조물을 조성·운영 하는 것은 열린 광장이자 보행 광장으로 탄생할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취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는 기억공간에 있던 사진과 물품 등을 서울기록원에 임시 보관한 뒤 2024년 5월 경기도 안산시 화랑공원에 추모시설이 완성되면 물품들을 이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