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내가 지시하며 옆에서 같이 작업"… 변호인 "검찰 유도신문, 증거 될 수 없어"
  • 10년 전 자신이 그린 그림 '호밀밭의 파수꾼'을 800만원에 판매했다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려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겸 화가 조영남(77·사진)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지난해 6월 조영남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기 사건과는 별개로 기소된 사건이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박노수)는 조영남이 '보조자'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린 사실을 구매자에게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기망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심과 동일하게 무죄를 선고했다.

    먼저 재판부는 "이 사건 그림(호밀밭의 파수꾼)을 피고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처럼 미술 작품을 거래할 때 친작(親作)인지 대작인지 여부는 작가의 인지도, 독창성, 창의성, 희소성, 가격 등 구매자가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구매자마다 구매하는 이유가 다 다르기 때문에 (친작 여부가)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자신의 그림이 친작인지, 아니면 보조자를 사용해 그린 것인지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신의성실의 원칙상 고지 의무를 위반해 피해자를 기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는 피고인의 작품으로 유통된 그림을 구입한 것"이라며 "피고인이 타인의 작품에 성명을 표시하는 등의 위작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제작 과정이 다르다고 해서 이를 기망으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1년 조영남의 그림 '호밀밭의 파수꾼'을 800만원에 산 A씨는 2016년 조영남이 '그림 대작' 의혹에 휘말리자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조영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나 A씨의 항고를 접수한 서울고검은 재수사를 벌여 2019년 1월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조영남을 기소하라'는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한 서울고검은 그림에서 발견되는 특정한 붓 터치를 조영남이 할 수 없고, 조영남이 대작 사실을 시인한 점 등을 감안해 사기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檢 제출 진술조서, 진정성립 안 돼"

    그러나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부장판사 오연수)은 2019년 2월 조영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 미술 전공 여대생이 해당 그림을 그렸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어 범행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검찰조사에서 '조영남이 그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진술도 나왔으나 이는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해 객관적인 증거로 사용하기 힘들고, 피고인도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이 작품을 그렸다며 상반된 주장을 펼쳐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특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진술조서는 '진정성립(어떤 문서나 사실이 맞다고 확인해 주는 것)'이 안 되고, 주관적인 참고인 진술 외에는 충분한 증거도 제시되지 않아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범죄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나머지 부분은 더 살필 필요도 없다"고 판결했다.

    이와 관련, 조영남의 법률대리를 맡은 신민영(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재판 과정에서 검찰 진술조서가 통째로 부정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며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의 능력이 전무하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원래 피의자 진술을 영상 녹화할 경우엔 반드시 조사의 개시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을 녹화해야 하는데, 검찰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진술이 담긴 중간시점부터 녹화해 형사소송법에 저촉되는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이에 따라 재판부는 검찰이 유도신문으로 얻어낸 진술은 객관적인 증거로 볼 수도 없다며 해당 신문조서는 '진정성립'이 되지 않으므로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영남은 "당시 서울대 재학생 두 명을 아르바이트로 썼는데 제가 다 지시를 하고 바로 옆에서 같이 작업을 했었다"며 "엄연히 내 작품인데 검찰은 제가 여학생에게 그림작업을 전적으로 맡긴 뒤 내다 판 것처럼 공소장에 썼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님께서 검찰이 내세운 증거를 전부 무효화시켰는데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