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협박' 후 경찰청장 "대북전단 철저한 수사" 지시… 바이든정부 "북한인권" 거듭 강조
  • ▲ 지난 4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 지난 4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북한이 지난 2일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의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막말로 가득 찬 협박을 쏟아냈다. 몇 시간 뒤 김창룡 경찰청장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신속한 수사와 엄정한 처리”를 지시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당국의 조사와 처벌 수위에 따라 미국·북한과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다. 

    김여정은 대북전단, 외무성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향해 막말·협박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4월25~30일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2회에 걸쳐 50만 장의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지난 2일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는 담화 3건을 내놨다. 시작은 김여정이었다. 

    김여정은 “남조선 탈북자 쓰레기”라고 막말을 하며 “우리가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든 책임은 (탈북자) 쓰레기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국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두고 시비를 걸었다. 

    “미국 집권자가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을 하면서 또 다시 실언을 했다”고 지적한 권 국장은 “미국 집권자는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인권을 언급한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권 국장은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근간이 무엇인지 선명해진 이상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 외무성도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미국의 도발”이라며 “미국이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부인하고 인권을 내정간섭의 도구로, 체제 전복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부득불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고 억지를 부렸다.

    김여정 협박 뒤 경찰청장 “대북전단 엄정처리하라”… 북한인권 강조한 미국과 정반대

    김여정의 협박담화가 나오자 통일부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확실히 이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 시간 뒤 김창룡 경찰청장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처리하라”고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에 지시한 사실이 전해졌다.
  •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찰은 이에 따라 박 대표가 공개한 영상 속 장소와 시점을 확인하고, 가담자도 찾아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박 대표 등 대북전단을 살포한 사람들에게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명확한 근거규정이 생겼다”고 밝힌 경찰은 “위법행위가 확인되면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세간의 여론은 “김여정의 하명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더니 또 김여정이 하명하니 대북전단 살포한 단체를 처벌하려 하느냐”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계는 이미 문재인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개정 또는 폐기를 촉구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에서 열린 톰랜토스인권위원회 청문회 참가 의원들은 “대북전단금지법은 국제인권규약(ICCPR)은 물론 한국 헌법에서 규정한 인권과 자유도 침해했다”며 법의 수정 또는 폐지를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 또한 지난 4월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기본적 인권이 침해될 때는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침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미국 국무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을 뒷받침하듯 ‘북한자유주간을 맞아’라는 성명을 내고 “미국은 존엄과 인권을 침해받는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북한의 인권상황을 비판했다.

    문재인정부 대북전단 처벌 수위 따라 달라질 미국과 북한 반응

    대북전단금지법에 따르면, 전단 살포는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이 박 대표와 자유북한운동연합 관계자들을 수사·처벌할 때 그 수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미국과 북한의 반응도 갈릴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5월21일 미국을 찾아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회담에서는 현재 수급 부족이 심각한 우한코로나 백신 확보, 미국의 새 대북정책을 위한 양국 정책조율 등 여러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방미하기 전 경찰이 박 대표 등 자유북한운동연합 관계자들을 구속 수사하면 이는 ‘북한인권’을 강조한 미국의 새 대북정책에 맞서는 꼴이 된다. 한미 정상회담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반면 대북전단 수사가 문 대통령의 방미 이후로 연기되거나 관련자들을 불구속 수사하면서 처벌 수위가 매우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 

    한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안보당국은 김여정이 지난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과 유사한 도발을 이번에도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 2019년 10월 김정은이 금강산에 있는 해금강 호텔을 돌아보고 있다. 김정은은 당시 한국 측 자산을 모두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9년 10월 김정은이 금강산에 있는 해금강 호텔을 돌아보고 있다. 김정은은 당시 한국 측 자산을 모두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여정은 지난해 대북전단 살포 나흘 뒤인 6월4일, 개성공단 완전 철거와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시사하는 담화를 내놨다. 6월 5일에는 통일전선부 대변인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지를 통보했다. 

    6월9일 북한은 남북 간 통신선을 완전히 차단했고, 6월16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을 언급하며 대화를 제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북한, 뻔한 패턴 보일까 아니면 새로운 패턴의 도발 시도할까

    북한이 김여정의 ‘막말담화’에 이어 또 도발한다면 언제, 어떤 형태가 될까. 일단 목표로는 금강산 관광시설이 꼽힌다. 

    북한이 지난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우리 돈으로 지은 건물인 데다 접경지역에서 폭파 장면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시설은 없다. 개성공단이 있지만, 이곳의 건물과 설비는 북한이 이미 일정부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 내 일부 공장만 파괴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주는 충격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유력한 시설은 금강산 관광시설이다. 김정은은 2019년 10월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을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시설을 완전히 철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시설 가운데 해금강호텔은 건물도 크고 시설도 많아 철거하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든다. 북한이 이번 대북전단을 빌미로 이를 폭파하는 쇼를 벌이고 선전매체를 통해 보도한다면 남한사회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만큼이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나아가 대북사업에 많은 돈을 들인 현대그룹은 동정여론을 얻을 수도 있다.

    북한이 도발할 시점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악당’들이 그렇듯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예측불가능한 행태를 보여왔다. 북한이 지난해 6월처럼 차근차근 수위를 높이며 남한의 자산을 파괴하는 순서를 보인다면 이는 ‘예측’ 가능한 패턴을 또 하나 만드는 셈이 된다. 

    하지만 지난 4월 북한의 행보는 이런 패턴을 빗겨 나갔다. 지난 4월 초 신포조선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관련 장비와 시설의 이동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이후 4월15일 김일성 생일을 전후로 SLBM 발사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 생일을 내부행사로 치렀다. 이에 다시 4월25일 인민군 창군기념일에 맞춰 SLBM을 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이어졌지만 북한은 이날도 도발하지 않았다.

    김여정의 이번 ‘막말담화’ 이후 북한이 보름 이상 별다른 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패턴’을 없애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도 안보기관 안팎에서 나온다고 정보소식통은 전했다.